다이제스트/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죤 웨슬리의 성화론〉

완전 추구 강박적 우려 있지만 ‘거룩 향한 진력’ 도와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죤 웨슬리의 성화론〉(유창형 저, 도서출판 목양)은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성화론에 대해 여러 신학자들의 전반적인 평가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성경과 개혁주의 입장에서 분석한 것이다.

저자의 웨슬리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웨슬리는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거룩한 순종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잠자는 영혼을 깨우려고 최선을 다했던 훌륭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다. 웨슬리의 견인 교리의 부정은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서 성도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완전 성화의 추구가 성도들을 너무 강박적인 심리상태로 몰아갈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안일하게 잠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의 성화론은 긍정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웨슬리의 성화 교리가 은혜 구조 안에서 인간의 책임에 대한 위치를 준비했으며 윤리적 자아를 형성함으로써 윤리적 주제를 수립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몽주의의 인간적인 사회 윤리학이나 사회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윤리학과 대조적으로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저자에 따르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성화에서 하나님의 선물과 인간의 노력을 조화시킴으로써 점진적 성화와 순간적 성화 사이에 균형을 유지했다. 완전을 획득한 후의 점진적 성화에 대한 그의 강조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성경의 진술과 일치한다. 또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기 때문에 인간이 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는 그의 관점은 낙관적이다. 선행에 의해 최종칭의를 획득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웨슬리의 성화론에 대한 부정적인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저자는 선행은혜가 그리스도의 속죄 덕분에 모든 사람에게 수여되었고 탄생 시부터 원죄의 죄책을 제거한다는 웨슬리의 주장은 비합리적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리스도의 속죄가 구약성경에 예표됐지만 그것을 그리스도의 속죄 전 이스라엘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적용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가 요한일서 3장 9절의 “죄를 범하지 않는다”를 “참으로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성경에 없는 ‘습관적으로’라는 단어를 더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칭의된 자는 내적인 죄를 제외한 외적인 죄는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내적인 죄는 외적인 죄로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웨슬리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오직 믿음에 의해 성화가 이뤄진다는 것은 성화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개혁주의의 진술과 조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믿음에 의해 완전히 성화가 되기 전까지 성화의 수단을 부지런히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함으로 인간의 책임을 매우 강조했다. 웨슬 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의 조화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인간의 책임을 더 강조하고 어떤 형태의 견인도 부정한 부분은 그를 알미니우스적 경향에 머물게 한 주요 요소다. 

한편 웨슬리가 경건의 일뿐만 아니라 모든 선행을 포함하는 자비의 일들도 성화의 수단으로 봤다는 점도 독특하다. 저자는 웨슬리의 관점은 성화를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경건과 자비의 일을 부지런히 할 것을 권면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권면했다. 웨슬리는 속회와 밴드와 신도회 등을 만들었으며 이는 오늘날 셀의 형태가 됐다. 또 뜨거운 기도의 열정은 성결교, 감리교, 오순절 교회의 은사운동과 맞물려 다시금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일부 지나치게 은사주의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오류를 보이고 있으나 정작 웨슬리는 비지성적 은사주의를 경계했던 사람이란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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