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로드〉

▲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어둠과 절망의 시대에 무작정 희망을 가지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희망을 권유하기 위해서는 신뢰할만하고, 가치 있는 본보기가 제시돼야 한다. 200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더 로드〉(The Road)는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다.

계시록의 한 장면처럼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불바다를 이룬다. 식물은 자라지 못하고, 절망과 암흑,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인간들은 급기야 인육(人肉)을 먹기 시작한다. 절망이 더 큰 절망을 낳고, 기어이 인간의 마지막 가치조차 인간 본능에 씹혀 갈래갈래 찢겨 나간 것이다.

그 절망의 땅 위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걸어간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인육을 먹는 살인마들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인육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착한 사람’이냐, 아니냐의 척도다. 그것은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살인마들이 접근해오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마지막 남은 총알 한 발을 아들의 머리에 겨누는 것이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소극적인 것이라면, 길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는 부자의 모습은 희망을 향한 적극적인 발걸음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음 속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아들 역시 낯선 나그네에게 처음 던지는 말이 ‘가슴 속에 불씨를 가졌나’는 질문이다.

폐허가 된 배경 탓에 스크린은 시종일관 잿빛이지만, 영화 속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뜨거운 불길이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산다. ‘내가 신이었다면 세상을 지금과 똑같이 만들었을거야. 널 얻었으니까. 내 분신을’이라는 아버지의 말은 아무리 세상이 어둠과 절망뿐이라도, 아들로 인해 고난을 견딜 수 있다는 고백이 담겼다.

아버지와 아들, 길, 불씨…. 의도했던 아니든 영화는 기독교적인 가치와 정신을 다분히 보여준다. 자살이 난무하는 절망의 시대에 기독교가 이 시대에 길이자, 불씨가 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더불어 나 자신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질문 앞에 선다.

영화 초입 ‘시계는 1시 17분에 멈췄다’는 아버지의 독백이 생생하다. 세상은 희망으로 말미암아 전진한다. 길 위에 서서 남쪽으로 향한 길을 따라 두 눈을 부릅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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