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국 개혁주의 어디로 가나 (2) 목회자 좌담회 : 개혁신학 미래는

‘포괄적 경건’이 개혁신앙 동력돼야

[칼빈 500주년 기념 특별기획]   좌담:오치용 오정호 김관선

오치용 목사:칼빈 500주년을 맞아 새로남교회에서 칼빈 책자, 각종 시디(CD), 포스터 등을 전시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칼빈주의 목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칼빈주의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 정말 반가웠습니다.

오정호 목사:지금, 목회자들도 영계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잡탕’이 대세입니다. 칼빈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안식년을 갖지 못하다가 한 달 휴가를 얻어 당시 개혁현장을 둘러 봤습니다. 프라하를 방문하여 개혁주의 목회자들이 효수형을 당하며 개혁주의를 사수한 현장을 목도하고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뿌리의 한 단면이라도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 가면 ‘뚜껑 없는 감옥’이 있습니다. 문도 열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개혁주의자들은 도망가지 않고 그곳에서 목숨걸고 진리를 사수했습니다. 냉정하게 현재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 봐야 합니다.

오치용:저도 에딘버러에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았겠습니까. 우리사회에 ‘뚜껑 없는 감옥’이 얼마나 많습니까. 개혁주의의 놀라운 신학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해야 합니다.

김관선 목사:교회가 ‘잡탕’되고 있다는데 동감입니다. 교회성장만 되면 다 괜찮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문제입니다.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초기 개혁자들은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우리는 어디에다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교회성장입니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솔직히 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목사들이 문제입니다.

오치용:과거에는 대부분 교회에서 바이블 스터디(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교재가 다양하여 선택하는데 어려웠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요즘 결론적으로 말해 목회현장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곳이 드뭅니다. 교회는 교리를 확고히 하여 이단사이비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리가 약할 때 기존 교회에 침투하여 파고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2013년 WCC 총회 부산 유치와 관련 말들이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 WCC와 우리 교단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같고 다른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정호:저도 순수신학을 희구하고 갈망합니다. 개인적으로 직선제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장로들이 모였는데도 금권선거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총대는 왜 되었냐고 질문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무지역노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족을 책임진다는 향도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모두 지역노회로 가야 합니다. 만일 칼빈이 살아있다면 지역노회와 무지역노회의 문제는 진즉에 해결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면 이런 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김관선:칼빈은 현실정치에 구체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를 교회가 제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실천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교육 등의 현장에 능력있고 전문적인 교인을 보내 리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따로 놉니다. 사회 각 분야의 현실을 전혀 못 짚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비뽑기는 최고의 수치입니다. 목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사회는 선거사범에 대해 부정을 철저히 엄단하고 있는데 목회자와 장로들이 그 능력도 안된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금권이 설치지 않고 지역적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능력을 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세상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개혁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칼빈주의에서 나온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닙니까? 세상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좇아가지도 못하는 교회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오치용:스코틀랜드장로교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찬성과 반대를 발을 구르면서 표시하는 것을 봤습니다. 총회현장에서 고함치고 소리지르는 것은 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미나가 안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미나를 하면 서로 싸우기만 한답니다. 성총회는 전국 대표의 최고의 천사들이 모여 여는 회의입니다. 총회든 노회든 ‘포괄적 경건’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삶 전체에서 종합적으로 경건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칼빈주의를 외치면서 어떻게 상스러운 말들이 오갈 수 있습니까. 칼빈의 개혁적인 삶은 글로칼(Grocal)해야 합니다. 글로벌(Gloval)과 로컬(Local)의 조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개별성과 전체성의 조화가 유지돼야 합니다.

오정호:‘포괄적 경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총회도 역사의식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제93회 제주총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기풍 선교사 100주년을 기념한 기획은 실패였습니다. 지난 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총회에서 칼빈탄생 500주년이면 적어도 총회현장에서 의미 있는 사업을 확산하거나 심화시키는데 노력했어야 합니다. 칼빈의 신학사상을 계승하고 반추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실지로 많은 전문가는 보유하고 있으면서 활용하지 못한 채 엇박자를 내고 있습니다.

오치용:사실, 개혁주의 칼빈비전총회를 개최하자고 총회에 제안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교단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자고 했는데 실행이 안됐습니다. 2012년 장로교 100주년을 대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하여 시행했으면 합니다.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 2012년을 향한 본격적인 로드맵을 형성하여 교단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오정호:칼빈주의를 직분자에게 교육시키는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공과 등에도 칼빈주의를 삽입하여 구체적인 교리를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교인은 최소한 영적인 자가발전이 이뤄지도록 칼빈주의의 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단의 미래에 초석을 놓는다는 심정으로 일해야 합니다.

김관선:칼빈주의는 우리 교단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기독교강요〉를 만화로 제작하여 보급하는 일도 괜찮다고 봅니다. 책 제목도 현대에 맞게 쉽게 풀어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치용:〈기독교강요〉 아래 ‘어둠을 넘어서 빛으로’라는 부제를 달아 교재화 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개혁신학 운동은 결국 책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오정호:직분자들에게 〈기독교강요〉를 읽도록 하는 것은 별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체계적인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지 대학 청년들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개혁주의신학연구원이 개소되어 기대됩니다.

김관선:교단 내부에서 역사에 대한 교육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제대로 된 칼빈주의가 뿌리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을 넓고 크게 보면서 사회에 대한 시각도 갖춰야 합니다.

오치용:맞습니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사회적응력과 맥이 통합니다. 그 정체성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아무튼 칼빈은 개혁을 협의의 교회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개혁에도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나갔으면 합니다. 칼빈의 개혁주의는 교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미치는 전 영역에 걸친 개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목회자들이 먼저 통회하고 새롭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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