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신앙 대탐험 / 개혁주의 미래를 묻다 (5)미국 장로교

[칼빈 500주년 기념 특별기획]

개혁신앙 무장 유럽 청교도 북미 장로교 기틀
세속주의 풍랑 맞서며 미국사회 막대한 영향

 

흔히 미국 사회를 ‘청교도가 세운 나라’ 또는 ‘세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른다. 왜일까? 그 연원은 미국 건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빈 후예, 신대륙 입성

17세기 즉 1600년대는 아메리카 대륙이 ‘미지의 땅’에서 ‘희망의 공간’로 변모하던 시절이다. 당시 유럽에는 칼빈주의 사상이 점점 흥왕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핍박도 만만치 않았던 바, 영국의 청교도를 위시하여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지의 개신교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이주해 왔다.

칼빈과 낙스로부터 개혁주의 신앙을 전수받은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 땅을 밟은 것은 1620년이다.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11월 매사추세츠주 연안에 도착했다. 이들은 미국 동북부에 뉴잉글랜드를 건설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기 이주민들의 신앙은 대단했다. 당시 청교도들은 “언덕위에 빛나는 하나님 나라의 도성을 건설하자” 라는 표어를 마음에 새겼다. 칼빈의 정신에 따라서 그들은 순결하고 근면한 삶을 추구했다. 그들은 세상의 개혁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였던 루이스(C. S. Lewis)는 “청교도들을 매료시켰던 인물은 위대한 신학자 칼빈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청교도들은 세 가지 조건을 근거로 시민권을 보장했다. 즉 회심체험, 건전한 칼빈주의 교리 고백, 그리고 신령한 경건생활이었다. 그만큼 칼빈이 신대륙 미국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온 이들은 동남부와 서부에 정착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1650년대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아일랜드인들은 1705년을 기점으로 50만명 이상이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청교도보다 세간에 덜 알려졌지만 미국 기독교 역사에 두드러진 역할을 감당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1683년에 메릴랜드에 장로교회가 세워졌고, 1706년에는 필라델피아 장로회가 형성됐다.
네덜란드 신교도들은 1623년 뉴욕으로 이주하기 시작해,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칼빈주의 교리를 고백하며 장로정치를 실시했다. 또 뉴저지 뉴브런스위크에 신학교를 세워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그중에 한명이 한국교회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가 이 학교 출신이다.

이밖에 프랑스 위그노와 독일 신교도들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네덜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공간에서 민족적 색깔을 지닌 장로교로 발전해갔다.

거센 파도를 헤쳐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거센 대서양의 파도를 힘겹게 넘어야 했던 칼빈주의자들, 이들의 신대륙 정착 역사 또한 거센 파도와의 씨름이었다.

차츰 이민이 증가됨과 동시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칼빈사상은 점점 희석되기 시작했다. 중생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찬이 개방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18세기 중엽에는 신대륙 이주민 중에 약 5%만 교회에 출석했다.

그래서 혹자들은 “초기 청교도들은 종교적 동기로 미국에 갔다. 그 다음에는 경제적 동기로 이민을 갔으며,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칼빈주의와 장로교는 신대륙에 불어온 세속주의라는 거센 풍랑에 맞서야 했다.

그러나 장로교로 요약되는 칼빈주의는 미국 정치와 문화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적인 예로 1776년에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장로교의 영향이 주효했다. 미국헌법과 정치제도 또한 장로교 정치를 기본으로 삼을 정도였다. 장로교 사상이 미국인들의 삶에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 장로교는 19세기에도 많은 역경에 부딪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시련은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이다. 18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계몽주의 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을 일으켰고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미국 장로교도 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신학사상의 기틀은 교육기관에서 나온다. 따라서 미국 신학교의 분열을 보면 장로교의 변화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636년 개혁주의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하버드대학이 19세기 초반부터 신학적으로 변질되어서 목회자 양성이라는 초기의 순수한 목표를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유니테리언(unitarianism)의 거점으로 남게 되었다.

이에 반발해 1746년에 세워진 통나무대학은 뉴저지대학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에 1755년 프린스턴신학교가 개교해 칼빈사상의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프린스턴도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에 반발해 1929년 웨스트민스터가 별도로 새워지는 아픔을 겪었다.

20세기 초반에도 신학적, 교리적 논쟁이 지속되었다. 특히 성경의 권위, 성경 해석, 장로교 전통의 본질적 강령들에 대한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논쟁들은 더 많은 분열을 가져왔는데, 프린스턴신학교의 그레샴 메첸(J. G. Machen)이 주도해 1936년 정통장로교회 교단을 설립했다. 이 교단은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충실하고자 했다.

몇 차례에 걸쳐 미국 내 부흥의 물결이 일어났다. 1800년대 6.9%였던 기독교 인구가 대각성 운동 후 45.3%로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부흥운동 또한 기독교인 증가라는 순기능과 함께 결과적으로 분열이라는 아픔도 함께 잉태했다.

세상은 교회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즉 언제나 풍랑이 있다는 뜻이다. 현대 미국 장로교도 신복음주의와 자유주의, 인본주의, 에큐메니칼 운동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문화라는 파도와 맞서고 있다. 이주민의 폭발적 증가로 이슬람교와 불교, 샤머니즘의 저항도 거세다.

풍랑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정체되었음을 말한다. 따라서 세상의 풍파는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파도를 통해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제 바라는 것은 이 가운데에서도 개혁적 칼빈주의 장로교가 복음의 푯대를 향해 나아가길 소망한다. 칼빈이 말했듯이, 건전한 교리가 부각되는 것은 사탄이 소동할 때이다.

 

[미국개혁주의 교회현황] PCUSA 가장 큰 교세 자랑 OPC는 괄목할 성장 보여

총신대학교에서 열린 개혁신학회에서 코넬리스 베네마 박사(Mid-America Reformed Seminary)는 “미국의 개혁주의 교회를 크게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베네마 박사가 소개한 미국 내 주요 개혁주의 교회 현황이다.

[미국연합장로교회(PCUSA)]
1983년 북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교단으로, 19세기 중엽에 시민전쟁 때에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한 것이다.
신학적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영향이 아주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이 교단은 1983년 교단 합동이후로 약 100만 명의 교인들을 잃어버렸다. 이 교단에 속한 신학교는 모두 열네 개에 이르고, 그 첫째로 꼽는 학교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다.

[복음장로교회(EPC)]
북장로교회가 1983년 합동하려고 하던 바로 그 직전에, 떨어져 나온 소수의 그룹이 형성한 교단으로, 비록 이 교단은 여성 안수를 허용하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통장로교회(OPC)]
1936년 그레샴 메첸의 지도하에 북장로교회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 교단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서약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개혁주의적 특징에 대해서 가장 선명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내지 선교와 해외 선교에 매우 적극적이며 최근에는 괄목할만한 교세신장을 하고 있다.

[미국장로교회(PCA)]
미국 장로교회는 1973년 남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가 연합을 하기 직전에 남장로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보수적인 회원들이 만든 교단이다. 교회의 영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1982년 미국 장로교회는 개혁장로교회, 복음총회(커번넌트 대학과 신학대학원)측과 다시 연합했다.

[개혁장로교회연합(ARP)]
개혁장로교회연합은 북미주에서 가장 오래된 개혁주의 교단들 중에 하나다. 이 교단의 뿌리는 스코틀랜드에 두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개혁장로교회연합은 칼 바르트(신정통신학)에 깊은 영향을 입었고, 여성안수를 허용했다. 이밖에 네덜란드 이주민 즉 화란이 중심이 된 미주개혁주의교회(RCA)와 북미주 기독교개혁교회(CRCNA)가 있으며, 한국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총회(KAPC) 미주예수교장로회총회(KPCA)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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