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출호 목사(안산동산교회)

“얘야 착하지.” 어릴 적 이런 말 한번 안 듣고 자란 아이는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자칫 아이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다. 부모 역시 이런 아이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

어른이나 아이입장에서 서로가 편하기에 익숙한 대로 적응하다보면 어느새 소위 착한아이가 되어있다. K는 아주 정상적인 아이이지만 늘 선택이나 결정하는데 장애를 겪는 아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배려 차원을 넘은 간섭함이 어릴 적부터 삶의 모든 부분에 침투하면서 아이는 익숙함을 넘어 그것은 자신의 실존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인생관이 결정된다. 그런데 부모에 의해 강요된 ‘착한 아이’는 본래의 자기를 잃고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가면을 쓰며, 불안한 ‘착한 아이’를 평생 연기하게 된다. 필자 역시 착한 아이를 살아오다가 나이가 들면서 반항을 시작한 것이 오히려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감에 큰 몫을 하게 되었다.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감에 있어서 아이의 자기정체감은 자기를 표출하면서 나타난다. 부모 입장에서 말 잘 듣는 아이가 다루기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자신의 생각대로 재단하려는 자기중심적인 부모, ‘무조건 내 식대로’ 따르라고 하는 부모,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 역시 착한 아이를 강요한다.
자기중심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내면을 신뢰하지 못하며 “엄마가 가르쳐 준대로만 하면 돼”라고 다그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파악하는 사람이 된다.

이같은 부모의 방식들은 사랑이 아니라 불안, 애정결핍, 사회적 무력감과 열등감이 전이된 병적 정서인 것이다.

아이들은 살면서 때론 반항해야한다. 아이들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맞추어 부모들이 아이들을 건강한 자녀로 커가고 있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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