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상도제일교회)

낯선 전화번호에 “목사님~ 저 유진인데요. 내일 찾아뵐게요”라는 문자가 왔다. “어! 유진이가 누구지? 얼마나 유진이란 이름이 많은데…. 요즘 이런 식의 이상한 문자가 많이 오지”라며 삭제버튼에 손이 올라갔다가 “아니 상대방이 나를 목사로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굴까?”

삭제버튼으로 향했던 손가락을 왼쪽 전화걸기로 옮기며 동시에 눌렀다.

세상에! 이게 누군가? 신학대학원시절 처음 유년부 사역할 때부터 중2까지 함께한 어린이이자 청소년이었던 ‘이유진’. 그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며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방에서 올라오겠다는 것이다. 더 감사한 것은 나를 기억하는 몇 사람과 함께 말이다. 

목사님! 하고 달려오는데 안아줄 수가 없었다. 청소년 이미지는 사라지고 성숙한 두 명의 여대생과 반말하기에도 머쓱한 남자대학생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색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목사님~ 우리 유년부 할 때 이랬죠 저랬죠”하며 곧바로 과거여행으로 출발했다.

목양실이 웃음방이 되었다. “목사님이 유년부 때 가르쳐 주신 성경구절과 모션 지금도 기억해요”하며 두 명이 서로 얼굴을 보고 손을 올렸다 내렸다 모션을 취했다.

“그리고 우리 중등부 때 임원들 데리고 해운대 여름 캠프에 가서 바닷가에서 두 손 들고 기도한 것 기억나요. 성경학교 때 조별발표 못해서 목사님께 혼난 것도 기억해요. 여름 성경학교 때 교회에서 잠잔 것도 기억해요. 목사님이랑 중등부 친구초청주일에 수개월동안 난타 연습한 것도 기억이 나요. 성경고사 공부할 때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분무기에 콜라를 넣어 뿌리신 것도 기억해요.”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쏟은 시간과 정성이 얼만데 아이들은 나의 멋진 양복과 멋 부렸던 모습은 하나도 기억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과 함께 땀 흘린 것만 기억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가정도 소홀히 했다. 건강도 소홀히 했다. 자신의 개발도 소홀히 했다. 난 그 당시 그것이 그토록 마음이 아팠는데 이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들을 향한 땀’으로 기억해주었고, 그 기억이 삭제가 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행복’으로 되살아났다.

이번 여름 사역 가운데 시원한 에어컨 밑에 있을 생각일랑 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릴 각오를 하자. 좀 더 과장하면 그 땀을 닦지도 말자. 아이들의 기억 속에 삭제되는 여름사역이 아니라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의 행복으로 되살아날 사역으로 만들자.

나에겐 8년이 걸렸다. 8년 만에 온 문자가 여러분에겐 몇 년 만에 올까? “선생님 저 유진인데요. 내일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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