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출호 목사(안산동산교회)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는 말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소위 내성적인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바라 외향이든 내향이든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부모입장에서 내성적인 아이들을 볼 때 답답하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어떤 요구를 함으로 부모가 원하는 모양새를 갖추기를 원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더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모든 부모들의 요구는 자녀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야곱의 자녀사랑은 채색 옷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그렇게 금지옥엽처럼 기른 아들인데,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자식 사랑을 집착이라 할 만큼 쏟아 부었던 아들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을 13~1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 야곱은 바로 왕 앞에 서 가장 큰 대접을 받게 된다. 아마 이때가 험한 인생을 살아온 야곱 인생의 최고의 대접을 받은 절정기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집착에 가까운 야곱의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하나님이 인위적으로라도 끊으신 것이다. 그 후 하나님은 자녀를 향한 당신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 것이다.

자녀가 가정 안에서는 괜찮은데 밖에서는 도통 사회성을 발휘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와 같이 이 아이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커갈 수 있도록 돕던 중 아이가 아주 짧은 시기 안에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로 변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가 가져야 할 자아 존중감은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통하여 스스로가 결정하고 성취하면서 건강한 어른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모의 사랑이 간섭이 될 경우 아이는 스스로가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간섭하는 부모의 생각은 내가 널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사실 아이들의 인생을 심각하게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아이는 인격이다. 인격은 스스로가 결정한 권리가 있다. 아이들이 부모 마음대로 움직이면 편하다. 하지만 언제가 스스로 부모의 품을 떠나가야 한다. 이것을 어린 시절부터 확인시켜야 한다. 지나친 간섭으로 아이 스스로의 감정마저 부모가 결정하게 된다면 아이자신은 스스로의 감정조차도 신뢰할 수 없는 상태로 멈추게 된다.

자녀가 너무 소극적인가? 부모가 너무 많은 아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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