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강 박사(교회사학자)
김인전(金仁全) 목사는 1876년 충남 한산에서 태어났다. 그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부친 김규배 장로의 권유 때문이었다. 김규배 장로는 동향이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입교한 유교적 지식인으로, 1909년 자신이 세운 한산 연봉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고, 나중에는 서울 새문안교회 장로로 시무하였다.
1914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노회에서 안수를 받은 김 목사는, 그 해 10월부터 전주서문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호남을 대표하는 교회였던 전주서문교회에서 5년간 시무하는 동안 김 목사는 교회의 부흥을 이끌면서 전라노회장과 성경학교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19년 3ㆍ1운동 당시 전주의 만세사건은 그를 목회자에서 독립운동가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전주 만세사건의 유력한 배후인물이었던 김 목사는 그 해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가담하였다. 그는 1922년 제4대 의정원 의장으로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김구, 여운형 선생 등과 무장항일운동단체인 노병회(勞兵會)를 조직하는 등 임정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1923년 5월 12일 김 목사는 상해의 한 여관에서 민족의 장래를 토의하던 중 분혈(噴血)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후 그곳에서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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