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출호 목사(안산동산교회)

아이들이 한참 사춘기에 들어가면 부모님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사실 청소년사역에 잔뼈가 굵은 나도 자녀가 욕하며 대항하는 일을 당하면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사춘기의 최고 정점에 있는 아이들? 사실 나도 어렵다. 하지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아이들에게 상대방이 어떤 관계인가는 아주 중요하다. 단지 어른이기에 어른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 속에서 청소년들은 심리적인 불안을 겪는다. 그때 무언가 확실한 것을 마음속에 심어주는 아이들 안에 숨겨져 있는 강력한 열정을 이끌어줄 수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는 않는다. 분명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때문에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가 어떻다는 것보다 본인 자신이 건강한 어른인가를 물어 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아는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화 말미에 “그러면 집사님. 제가 하라는 대로 하실 수 있겠어요?” 아이에게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아 주실 것을 요청했을 때 엄마는 불가능하다고 하신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엄마의 불안함을 이해하지만 거듭 그럴 수 있냐고 말했다. 결국은 엄마의 의심을 뒤로 하고 허락을 받아냈다. 늘 심한 잔소리로 아이의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던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진 날, 아이는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지자 아이는 오히려 엄마가 이상해 보였다. 2개월이 지난 늦은 저녁에 그 집사님은 놀란 모습으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목사님! 아이가 평균 90점이 넘었어요.”사건은 이랬다. 엄마의 심한 간섭이 사라진 일주일 후, 아이는 오히려 그 싫어하던 공부를 스스로 하기 시작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보다는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더 큰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눈썹에 피어싱을 했다. 목사님은 속이 많이 상했지만 오히려 멋있다고 해주었다. 자녀 입장에서는 이상할 듯했다. 목사님이 그런 반응을 보이니 말이다.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어싱을 뺀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하는 말은 이랬다. “아버지! 옷 입고 벗기가 귀찮아서 빼 버렸어요.” 인간의 힘에 망가진 자연을 보면서 세상에는 놔두면 더 괜찮아 지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이 든다.

무관심도 하나의 전략이다. 일일이 다 간섭과 참여를 하기보다 좀 여유를 가지고 아이에게 접근을 하면 아이에게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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