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강 박사 / 교회사학자

1876년 11월 17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데밍(Charles S. Deming, 都伊明)은 뉴욕대와 드루신학교를 졸업하고 1902년부터 뉴욕주에서 목회하였다. 그의 부친 역시 미국 감리교 목사였다. 데밍은 1905년 9월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1911년 까지 서울과 해주에서 사역하였다. 그 후 감리교 협성신학교에서 15년 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그 사이 피어선성경학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연희전문학교 강사도 겸임하였다. 1927년부터는 벙커(Dalziel A. Bunker) 선교사의 뒤를 이어 조선예수교서회의 총무로 2년간 시무하였다.

1929년 만주선교사를 자원한 데밍은 하얼빈에 주재하면서 8년간 만주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심령을 구원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복음을 전하면서 한국인들의 생활고를 목격하고 한번은 당시 주한선교사연합회에서 연보를 하여 얻은 돈 750원(현재 7500만원) 중에서 500원은 논을 사서 동포들에게 농토를 마련해 주었고, 나머지 250원은 복음전파에 사용하였다. 데밍 선교사는 1937년 12월 14일 안식년으로 귀국하였다가 폐렴이 악화되어 이듬해 3월 소천하였다. 그는 33년 동안 한국과 만주에서 봉사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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