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참여는 문선명의 마지막 지상 과제 ... 자금 바탕 집요한 시도 잇따를 것

탁지일 교수
총선이 끝난 후 통일교 가정당은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공식논평을 내 놓았다(2008.4.11). 가정당은 전국 245개 모든 지역구에 후보자를 냈으나,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단 한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총 득표율은 1.05%에 그쳤다. 가정당의 정계진출 시도는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야심찬 시도 실패로

가정당은 자신들의 정계진출 실패 원인에 대해 {기존 정당에 비해 자금력과 인적자원이 풍부하지 못했고, 현실 정치판에서 싸워본 경험이 일천하였으며, 가정행복시대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으나 경제현황 등 민감한 문제에 가리어져 이슈화 되지 못했습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가정당의 이러한 분석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물론 출마자들이 급조되어 인물난을 겪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기존 정당에 비해 자금력에서 뒤졌다는 분석을 납득하기 어렵다. 전국 245개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벌인 가정당의 득표활동은 충분한 경제적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 관련공약이 경제현황 등의 문제에 가려져 이슈화 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통일교 내부에는 다른 분석도 있는 듯하다. 통일교관련 신문인 <세계일보>의 분석에 따르면, 가정에 초점을 맞춘 가정당의 홍보 전략은 효과적이었으며, {예상광고효과보다 20% 늘어난 1억1900만 회수가 광고(노출)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히고 있다(2008.4.11). 이는 가정당의 분석처럼 그들의 실패가 공약홍보전략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들이 {현실 정치판에서 싸워본 경험이 일천}하였다는 분석은 납득할만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통일교의 정치참여는 주로 간접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금번 총선을 통해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시도한 통일교는 정치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 왔다. 문선명은 정치적 힘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중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경험해 왔다. 그가 아무 것도 없이 미국에 진출했을 때, 그의 성공을 도왔던 것은 미국의 보수정치인들이었다. 1960년대 초 반전(反戰)의 시대에 소수의 통일교인들은 반전운동의 메카 버클리대학교에서 찬전(贊戰)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는 백악관과 CIA의 지지를 얻게 되는 동시에 미국사회에 자신들의 존재를 가시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통일교는 미국보수정치권의 도움으로 미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렇듯 정치적 후원이 자신들과 같은 신흥종교단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한 통일교는 이를 국내 상황에도 적용한다. 즉 군사정권의 반공(反共)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많은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확보한 것이다. 군사정권의 도움으로 통일교는 국내에서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군사정권 시기는 통일교에 반대하는 것이 반공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통하던 때였다.

이러한 간접적인 정치참여에 한계를 느끼고,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시도한 것이 금번 총선참여였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자 통일교의 정치적 입지는 확연히 축소되었다. 통일교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을 갖는다는 것이 자신들의 정치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정치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통일교의 정치자금에 관심을 두던 정치장학생들이 이제는 통일교와의 관련성을 거북스러워하면서 통일교와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통일교로 하여금 [간접적인] 정치참여에서 [직접적인] 정계진출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게 만든 이유이다.

"정치로 지상천국" 꿈 꿔

무엇보다도 정계진출은 90세를 바라보는 문선명에게 남은 마지막 지상과제이다. 소위 {제3의 아담} {평화의 왕} {구세주}인 그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을 자타가 감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경제, 문화, 교육, 심지어는 언론 분야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그가 최종적으로 남은 분야인 정치권에 대한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문선명과 통일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문선명이 세상의 메시아로 선포되는 지상천국을 한반도에 건설]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통일교를 무모하게 정계진출을 꿈꾸는 [비상식적이고 종교조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통일교는 [성공적인 경제조직]이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충분한 이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계진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혹자는 통일교의 문선명이 사망할 경우 통일교는 쇠퇴하리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종교조직은 창교주의 존재유무가 그 존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경제조직은 대체적으로 그 창업주가 사망할 경우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후계구도가 구축되고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통일교 활동을 보면, 체계적인 후계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문선명의 3남 문현진이 국제통일교회(Unification Church International) 회장으로 취임하여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었고, 4남 문국진은 한국통일그룹회장 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 이사장으로, 7남인 문형진은 서울청파교회의 당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문선명 이후의 후계구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는 《원리강론》의 예언대로, 문선명이 구세주가 되는 지상천국을 한반도에 건설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통일교와 한국교회의 관계가 적대적(敵對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교는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고 대신 문선명을 {메시아}, {재림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문선명이 메시아로 군림하는 지상천국건설의 꿈을 위해서 결코 정계진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가정당은 총선 후 대변인 공식논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향해 출발을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 정치세계에서 꽃 피울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