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사모가 달라지고 있다] 2. 사모로 산다는 것

사모를 기획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는 건 수순이라 하기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듣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드러나는 것에 익숙치도, 편치도 않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강청하고 읍소했다. 상당히 정제(?)된 내용이긴 하지만, 환경과 연배가 다른 그들에게서 사모의 소리 1장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그들에게는 목회자 수준으로 교회와 지역, 그리고 자신의 사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농짙었다.

<편집자 주>


가장 아픈 자리일수도 선택된 섭리에 감사를

포도원교회 김명숙 사모 

사촌, 팔촌 다 뒤져도 예수 믿는 사람, 아니 예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 무지랭이 집안에서 하나님은 나를 불러내셨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말씀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나와 결국 사모가 되었다.

목회자의 아내로 산다함은 기쁨과 고통이 첨예하게 교차하는 현장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서 폭풍우를 견디어 내는 뿌리 깊은 나무가 돼야함을 교회개척 십년의 시간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남편의 목회 내조와 자녀 양육, 그리고 사모로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따라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의미를 주곤 한다. 순탄할 때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커다란 만족감을 주지만 교회가 어려움에 휩싸이고 목사님이 고통을 겪는 일이 파도처럼 밀려 올 때에는 도망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특수성의 여건 속에 놓여 있는 사모의 역할에 대해 한국 교회 안에 여러 논란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쉽지는 않겠지만 개교회의 형편과 담임목회자의 생각, 또 사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개별적 특성과 재능에 따라 다양한 역할 모델이 제시될 수는 있다고 본다.

나는 남편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정사랑교실, 자녀사랑교실, 합심기도모임을 통하여 성도들을 만나고 있다. 성령께서는 부족한 사모가 섬기는 이 사역을 통해 성도들의 아픈 내면을 치유하시고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케 하셔서 가정과 자녀가 온전하게 세워지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여성의 따뜻함과 섬세함, 부드러운 접촉으로 그들의 상처에 접근할 때 많은 은혜와 치유가 임하여 개인의 행복과 교회를 든든히 세움에 기초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이름이지만 세상에서는 어쩌면 가장 아플 수도 있는 사모라는 자리….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모로 선택하신 섭리 앞에 늘 감사드린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평범한 소녀에서 주님을 영원토록 섬길 수 있는 은혜의 성소에 붙박이로 놓아두신 그 손길….

사모라는 자리가 쉽지 않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려는 지극히 평범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푸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사모로서 감사와 행복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보여주시는 열매가 너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아름다운 고백을 읊조린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다름 인정할 때 기쁨이 숨은 손길 조금씩 발견

김제 순동교회 박신자 사모

어렸을 적부터 교회 생활에 익숙하게 젖어 자라왔건만 목회자와 결혼함으로써 겪게 되는 특수한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교인들의 고정화된 시선과 기대치, 교회일도 마음 놓고 할 수 없고, 그리고 평생 한 목회자와 같이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다른 교회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시골에 살게 될 것 역시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가 시골교회 하면 먼저 떠올리는 분위기는 우선 규모도 작고, 노인들이 많고, 일꾼도 없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한마디로 비전이 없는 모습이다. 대부분 목회자들의 시각도 그러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시각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각자에게 주신 역할과 분량을 보시기 때문이다. 시골교회는 사람의 비전은 없지만 하나님의 비전이 있는 곳이다. 며칠 후면 요단강 건너갈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구원하시는 일은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것인가?

‘작지만 강한 교회를 이룹시다.’ 우리교회 올해 표어이다. 사실 우리 교회가 숫자적으로 큰 교회를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강한 교회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히려 크건 작건 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이 작은 머리로 판단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몸부림쳐 왔을까? 생각해보면 그 동안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며 나태해 있었던 것 같다.

도시교회와 시골교회는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고 이런 식의 ‘차등’이 아닌, 단지 ‘다름’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도시교회는 거기서, 시골교회는 여기서 자기에게 주어진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가면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시골 아줌마가 뭐 그리 할 줄 아는 게 있을까 싶겠지만, 사실은 어지간히 큰 교회에서 말씀묵상(QT) 캠프를 위탁 받아서 교사교육 차 가는 길이다.

지난번 어느 농촌교회에서 말씀묵상(QT)을 시작하려고 여러 차례 세미나를 가졌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둥, 알아듣기 어렵다는 둥, 눈이 아파서 책을 못 보겠다는 둥 하소연이 쏟아진다. 그래도 교회 안에서 젊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인데도 이런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 일들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또한 시골교회 나름대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독특한 장점들도 있다.

올해로 결혼 한지 17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목회자와 결혼 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골이 좋은 평신도가 되어버렸다. 그곳에 숨어있었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조금씩 알아가기 때문이다.


상담사역 힘들게 시작 치유·회복 역사 잇따라

대구 달서교회 김정임 사모

청년시절에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사모로 서원하고, 주를 위해 아무런 제약없이 마음껏 섬기고 싶다는 일념으로 사모가 되었다.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과 인도하심에 사모의 길을 즐겁게 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마음껏 섬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모의 길은 그리 녹록한 문제는 아니었다.
성도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성도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기에 어떻게 하든지 돕고 싶다는 심정으로 목회상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목회상담의 기본인 하나님의 시각으로 인간관이 형성되기까지 수많은 나의 편견과 싸워야 했다. 또한 상담에 대한 주위의 부정적인 생각들과도 싸워야하는 이중의 고통이 있었다.
사모의 신분으로 상담이라는 전문영역에 다가간다는 것은 교회의 편견이나 오해들과도 한 판 씨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힘이 드는 여정이었다.

가장 큰 오해는 목회상담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바라볼 때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소위 인본주의자처럼 비춰지는 점이고, 또 하나는 사모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 교회에서 어떻게 교제할 수 있겠나 하는 우려내지는 수치심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교회 밖에서 먼저 활동하게 되었다. 사비를 들여 개인상담실 [쉴만한 물가]를 무료로 운영하면서, {과연 이 사역을 해야 되는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성도들 중에는 {사모가 돈벌이 하는 것 아닌가?} 또 {목사님을 잘 내조하고 도와야 되는데 시간을 빼앗기고 피곤하면 우리 목사님만 힘드신 건 아닌가?}라는 시각과 사모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숱한 의혹들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기독상담연구소 부설 [쉴만한 물가]로 등록되면서 여러 상담가와 협력해서 사역을 하기에 대부분의 의문들과 오해는 불식되고 오히려 교회 안에 상담실이 꼭 필요하다는 데까지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상담을 받은 성도들의 간증을 통해 상담사역이 알려지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상담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믿음이 자라며,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역자의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교회내의 영적인 분위기가 가족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내어놓고 기도하며 감싸주는 치유와 회복의 기름부으심이 소그룹을 통해서 실천되고 맛보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모를 통하여 이 사역을 확산시키시면서 가정들이 회복되고 개인들이 회복되는 증거들을 곳곳에서 보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사모의 은사를 인정하고 끝까지 지지하며 격려하고 용기를 준 목사님과, 기도하시면서 기다려준 우리 성도들의 한결같은 사랑과 인내, 그리고 성령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치유하심의 기름 부으심이 계속 이 상담사역위에 임하시고 계심을 확신한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모구나!} 오늘도 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