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에게서 배우는 율법의 은혜

(어니스트 케빈 지음/임원택 옮김/수풀)
어니스트 케빈은 청교도주의는 {교회의식의 철저한 개혁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경건한 삶의 방식을 위한 시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청교도주의의 근본원리는 성경의 배타적 최고 권위 인정이었으며, 이것은 다시 하나님의 율법의 중요성으로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고 케빈은 말한다. 청교도들의 이러한 [주의]는 그들의 시대와 삶에서 나온 결단이요 자세였다. 16~17세기 {당시 교회의 부패는 청교도들로 하여금 성경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어떤 것도 교회 안에서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할 마음이 일어나게 했던 것이다.} 3세기 반 전에 청교도들이 삶의 표준으로 삼았던 그 율법을 이 시대는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45년 런던 바이블 칼리지에서 가르치면서 이 책을 쓴, 우리의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아닌 고 어니스트 케빈 박사는 {현재 겪고 있는 진퇴양난}에 대한 해결책을 청교도들에게서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포함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현재] 도덕적 무관심의 조류에 휩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율법은 과연 폐물이 되었나? 객관적 도덕법에 대한 믿음을 버린 세속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마저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세의 율법을 크게 넘어 섰으므로 율법은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케빈은 율법에 대한 청교도들의 인식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해하면서, 율법은 창조주-피조물 관계에서 나온 것이며 인간의 영적 본질에 매우 본질적인 것임을 증명한다. 또 그는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율법] [은혜언약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에서 율법이 차지하는 위치를 복원한다.


그는 왜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나

▲ 이동휘와 기독교
(서정민 지음/연세대학교출판부)
{이동휘는 기독교전도자로서 국내 사회주의 운동의 가장 선두에 있던 선구자였다.}

서정민 교수(연세대 교회사‧한국기독교역사학회장)는 이 점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동휘를 기독교사회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결론내릴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이동휘는 기독교인으로 활발한 전도활동을 하며 학교와 교회설립에 힘썼으나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라는 이류로 제대로 거론되지 못했다. 또 그는 사회주의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민족주의자라는 칭함으로 인해, 진정한 사회주의자라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우리의 일반적 관념 속에서 서로 충돌하는 기독교 전도자와 사회주의자라는 두 수식어가 동시에 따라다닌 이동휘. 그만큼, 학문적 조명에서도 벗어나 있는 그를 서정민 교수가 기독교 또는 한국 교회사와의 관련 속에서 연구했다.

그가 어떻게 기독교와 접촉하게 됐고 그의 기독교 신앙은 어떠했는지, 특히 그의 강화도에서의 개종 경험과 활동은 어떤 것이었는지, 내한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특히 그리어슨과 그의 관계, 기독교 전도자 이휘동와 함경노회의 관계, 이동휘의 만주 이주 및 선교, 사회주의 수용 과정과 기독교 신앙 포기 여부 등을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한다.

[한국 사회주의와 기독교 관계 연구]라는 작은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책은 이데올로기적 범주 나누기에 길들여져 인간과 역사 그 실체를 맨 눈 그대로 볼 수 없는 우리에게 인식 전환의 도전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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