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

‘조선의 간디’로 널리 알려진 조만식(曺晩植)은 1883년 2월 1일 평양 진향리에서 선비인 조경학의 1남 2녀 중 독자로 출생했다.

동료 한정교의 적극적인 권유로 22세 되던 해인 1904년 술과 담배를 끊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듬해 사업을 정리하고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했다. 재학 중에 평양의 태극서관(太極書館) 주인 안태국(安泰國)과 민족주의자 안창호(安昌浩) 등의 활동과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숭실중학교를 졸업한 그해 6월 일본에 유학하였고 동경에 있는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영어와 수학을 배우는 한편, 여기에서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 사상을 배워 평생 그의 사상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1911년 메이지대학 전문부법학화에 진학하였고 이 때 송진우(宋鎭禹), 김성수(金性洙) 등 동지를 만났다.  한편 정익로, 백남훈, 김정식 등과 1909년 동경 YMCA회관에서 정식 설립된 동경한인교회 설립에도 참여하여 초대 영수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기독백과).

고당이 유학할 즈음 동경 YMCA는 한국 유학생들의 집결지요, 민족운동의 심장부였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유학생들에게 “장차 우리가 민족을 위해 일할 때 고향을 묻지 말자”고 당부했다(송삼용:고당 조만식). 그는 조선의 간디이지 평양의 간디가 아니었다.

대저 한 시대를 움직이는 영도자(領導者)는 고향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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