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믿음을 회복하자

부활절 특별기고
부활의 믿음을 회복하자_제목 좀 손 좀 보소, 혹 관련 사진 같은거 있음 참고하시고
(김정우, 총신대신대원 구약학 교수)

올 봄에도 어김 없이 찾아온 불청객 황사가 온 누리를 뒤덮기는 하지만, 그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목련과 매화와 벚꽃의 꽃망울들이 한꺼번에 꽃술을 터뜨리며 겨울의 긴 죽음과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신비를 일깨워주고 있다. 봄이 오면 엄동설한에 죽어 있던 모든 초목들도 때를 따라 깨어 일어나고 짐승과 새들도 힘찬 생명의 몸짓으로 노래한다. 농부들이 돌처럼 딱딱한 목화씨를 뿌리면 하나의 씨앗에서 수백 송이의 목화 꽃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누에는 고치를 짓고 그 속에 틀어 박혀죽은 듯이 있지만 생명의 조화 가운데 나방으로 변하며, 애벌레는 나무 잎을 갉아먹다가 어느 날 나비로 변하여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다닌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주님께서는 부활의 도리를 창조의 질서 속에 숨겨 두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명료한 부활의 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 15:36-38, 42).
그러나 자연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부활보다 더 어려운 이치가 없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진귀하고 희귀한 이야기들이 신화와 전설과 역사 속에 등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같은 이야기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세계의 역사에서 가장 강한 독재적 권력을 향유하고 만리장성까지 세웠던 진시황조차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삼신산의 불로초는 구하려고 하였지만, 자신의 부활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사도 바울이 철학의 도시 아테네의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깊은 철학자들에게‘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였을 때,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바울을 조롱하였다(행17:32).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신약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학적 세계관이 전제하는 ‘유추의 법칙’에 위반되므로 역사적인 사건일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가 볼 때 부활 사건은 초대교회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 담긴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부활의 의미를 실존적으로 경험하여야 하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부활을 아는 사람에게 부활의 도리는 창조의 도리만큼 확실하지만, 사람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거부한다. 사실 부활의 도리는 너무나 오묘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솥 밥을 먹으며 삼 년 동안 가까이에서 따라 다니던 제자들조차도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 없었으며,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다시 사신 주님을 보았다’고 말할 때에도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하였다(요 20:25). 그러나 구약성경을 보면, 완전한 파멸과 죽음 앞에 서 있는 개인과 나라가 비로소 부활의 소망을 사모한 것을 보게 된다. 욥은 자신의 모든 산업과 자녀와 건강까지도 상실한 자리에서 자신의 ‘가죽이 썩은 후에 육체 밖에서 장차 땅에 서실 그의 구속주’를 사모하였다(19:26). 에스겔 선지자는 나라도 잃고 성전도 파괴되며 왕족과 귀족과 지도자들과 젊은이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지경에서, 마치 해골 골짜기에 널브러진 민족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이뼈 저 뼈들이 서로 맞아서 연결되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면서 생기가 들어가 지극히 큰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았다(37:1-14). 사람들이 부활의 도리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죽음의 실존 앞에 서보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는 다른 어떤 종교의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부활의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고 순종할 때 아들이 다시 살아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선지자 엘리야는 사르밧의 과부 아들을 살리고,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었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께서는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릴 뿐 아니라그가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장사 된 지 나흘이 지나 벌써 시체에서 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도르가라는 여제자가 죽어 그 시체를 씻어 다락에 두었지만, 살려내었다(행 9:36-42). 바울도 자신의 긴 설교를 듣다가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삼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려내었다(행 20:9-12).
그러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참된 부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경에 나오는 다른 부활 기사들과 다른 것은 그가 친히 죽음에서 일어나셨을 뿐 아니라, 부활 후 다시 죽음을 맛보지 않으시고 승천하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데 있다. 이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과 ‘장사 후 사흘 만에 다시 사심’과 ‘승천’과 ‘오순절 성령강림’은 서로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기독교 신앙의 중추적인 핵심을 이루게 된다. 바로 이런 성경적 가르침 때문에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보다도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2007년 부활절이 다른 어떤 해의 부활절보다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100년 전 평양에서 ‘한국의 오순절’로 불려지는 대부흥운동을 함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는 욥과 에스겔처럼 개인적이며 국가적인 죽음을 경험하였고, 세계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소망의 빛줄기도 찾아 볼 수 없었다. 100년전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상실하였고, 1906년 2월에 이토 히로부미는 제 1대 총독으로 취임하였으며, 1907년 7월 24일에는 고종황제가 강제적으로 퇴위 당하게 되는 역사의 종말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부흥운동을 통하여 부활의 생명을 배태하게 하셨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선교사들은 단지 세상과 단절된 초월적인 신앙만을 들고 오지 않았으며, 은둔의 나라 조선에 기독교 정신을 통한 문명사적인 전환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지 5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자들이나 쓰는 암글’로 여겨지던 한글 속에 이 세상의 그 어떤 역사나 사상이나 종교의 작품들보다도 우월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담아내었다. 즉,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한글은 거듭나고 부활하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약 한글로 된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얼과 신앙은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기독교가 우리나라 안으로 들어오면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그 동안 폐습으로 막혔던 모든 것들이 철폐되고 새로운 소통이 일어나게 되었다. 여성들은 한평생 집 안에 갇혀 있다가 공적인 교육을 받아 사회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남녀칠세부동석을 실천하던 나라에서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에 앉아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양반과 상놈도 예배 전에 따로 앉아 있다가 은혜 체험을 한 후에는 형제의 사랑 안에서 함께 앉아 예배를 드렸고, 강화도의 한 과부 할머니는 종으로 산 여자 아이를 불러 종 문서를 불태우고 자유를 주었으며, 한 군수는 자신의 사랑하는 애첩을 멀리 보내었다. 이리하여 당시 어둠과 고립 속에 있던 이 나라에 복음의 빛을 비췄고 막혔던 물꼬가 터지듯 거대한 소통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100년 전 우리나라에 부활의 종교였다.
이리하여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는 부활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키게 되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상동교회는 원래 달성교회였으며(1885. 9. 10. 창립), <조선그리스도인회보>는 1898년 4월 13일에 있었던 부활절 예배를 의미심장하게 드린 장면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대한회보 2권. 15호. 합 63). "달성회당에서는 예수 부활일을 예비하여 부활절 주일부터 수난절 날까지 밤마다 모여 특별 기도와 예수께서 그 동안에 하시던 일을 차례로 공부하고 수난일을 당하매 각 교우들이 상오 10시 종 소리에 일제히 모여 비창한 마음으로 성만찬을 받았으며 이로 인하여 우리 마음속이 깨끗이 되었다. 그런고로 밖에까지 깨끗이 하기 위하여 남녀 교당을 교우들이 모여 도배하고 성단 전후좌우 벽상과 각 기둥들을 홍포장으로 꾸몄으며 성단 밑에는 각색 화초로 층층이 벌렸는데 그 중에 요사이 열매 맺은 실과 나무 가운데 제일 귀한 것으로 장식하고 남 회당 맞은편은 ‘예수 부활하셨네’ 일곱 자를 국문 금자로 완연히 새겼으며, 여 회당 맞은편은 ‘할렐루야 주 찬송’ 일곱 자를 역시 국문 금자로 완연히 새겨 붙였다. 부활일을 당하여 남녀노유 사백 여명이 모여 기쁨으로 예배하는데 로부인은 풍금을 타시고 쇄만 선교사는 나팔을 불고 남녀교우들은 목소리로 찬미를 화답하니 참 쇄락한 정신이 완연히 천당에 앉은 듯하며 본처 목사와 함께 할렐루야 찬송 노래를 왕왕이 부르는데 마디마디 성신의 참 기쁨이 각인의 심장을 찌르는 듯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기 위하여 한 주일 성경공부와 특별기도회로 준비하였으며, 죄를 고백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내면적인 준비뿐 아니라, 교회당까지도 모두 새롭게 도배하는 마음가짐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임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분명히 경험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부활신앙을 잃어버렸고, 참신함도 함께 잃어버렸다. 우리 교회는 마치 황사가 가득한 하늘 아래에 있는 것 같으며,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갱신 보다는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기복신앙으로 변질되고 있다. 우리의 교회는 성령 안에서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되기보다 물욕과 분열로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서, 다시한번 더 성경으로 돌아가고 평양으로 되돌아가 부활의 믿음을 회복하고 부활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21세기 사회와 세계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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