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년 전 있었던 종교개혁은 단순히 기독교의 역사를 바꾼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세계의 역사를 돌려놓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당시 부패하고 오만한 교회의 실상은 성직자로 있던 같은 동역자들에게마저 심한 혐오감을 주었고 결국 자성의 목소리가 아닌 척결과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종교개혁기념일은 마르틴 루터가 95개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붙였던 1517년 10월 31일을 기념해서 생긴날이며 이 날을 즈음하여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에서 종교개혁주일은 달력속에나 존재하는 기일이 돼 버렸다.  
사실 개신교의 탄생은 종교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오늘날 무엇보다도 의미있게 되새기고 기념해야 할 날이 종교개혁주일이라고 본다. 성장이 정체된 현실에서, 서방교회들이 줄줄이 폐허가 되어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예지력을 갖고 날마다 개혁돼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는 사회문화에 밀려 변방문화가 돼버렸으며 사회를 선도하기 보다는 뒤따라가기 바쁜 시대가 됐다. 
그러나 교회가 부패하거나 타락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종교개혁 당시처럼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몇몇 교회 문제나 교인이 일으킨 문제로 한국교회가 부패하거나 비전이 없는 집단으로 호도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러나 일부 윤리적 도덕적 문제가 있고 사회를 계도하고 문화를 압도해 가는 면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무감각증이라고 본다. 한국교회를 향한 위협과 위기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진단능력도 상실해 있으며 결과에 대한 예측마저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일각에서 외치는 소리는 듣는 이가 거의 없다. 들어도 귀담아 듣지 않고 광야의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종교개혁의 의미는 자성과 개혁의 바람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큰 공감대를 형성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되고 사회의 곳곳에서 실현되어 풍겨나게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우물에 갇혀 있다. 형식에 치우쳐 있으며 스스로를 얽매이고 위축되어 있다. 말씀과 정의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하나님은 본질을 원하시는데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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