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을 제2의 오순절이 되게 하자」는 표어 아래 1987년 서울올림픽전도협의회(회장:조종남)를 창립한 한국교계는 부족한 경험에도 불구, 88올림픽 동안 하나가 되었다.


올림픽전도의 센터라 할 수 있었던 두 개의 선수촌 기독교관만 해도 65명의 운영인원이 184번(4273명 참석)의 예배, 100개국 2446명의 상담, 40회에 걸친 영화상영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중국 소련 아랍 선수 전도를 위해 3번의 중국선수 예배를 인도했고 2명의 소련 채플린이 입국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전도는 9개 분과를 조직한 가운데 세가지 방향에서 진행됐다. 첫째 생활전도였다. 성도들은 자신이 경영하는 쇼핑센터 백화점 시장 관광회사 등을 통해 최대의 친절을 베풀며 전도활동을 펼쳤다. 또 민박을 자청하기도 했고 외국언론이 귀찮을 정도로 복음을 전한다고 비꼴만큼 경기장 내외에서 전도열기가 뜨거웠다.


둘째 직접전도였다. 노방전도분과 통역봉사 문서전도 매스컴전도 시청각전도분과위원회를 조직, 36개국 언어를 구사하며 복음을 전했다. 또 선수촌 내에 종교관을 설치, 예배와 상담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노방전도분과에 참가한 교회는 822개처였고 6만여권이 넘는 8개국 성경과 300만장이 넘는 38개국 전도지를 외국선수와 관람객들에게 전했다. 성화봉송과 유사한 성경봉송을 실시, 2019명의 성도들이 부산부터 서울까지 800km의 구간을 성경을 들고 뛰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셋째는 문화를 통한 전도였다. 음악전도와 예능인전도분과를 중심으로 한강에 천막극장을 시설하여 각종 예술행사를 가졌다. 또 각 나라에서 온 전도팀들 가운데 합창그룹, 드라마팀, 댄스팀, 연극팀은 서울시가 주관하는 세계인의 축제에 참가해 복음을 전했다. 여의도광장에서도 매일같이 찬양집회가 열렸다.


관점의 차이가 있지만 88 올림픽은 국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교계에도 성공한 올림픽이었다. 당시 전도에 참가했던 교계지도자들과 성도들은 다시 한번 스포츠를 계기로 역동적이고 단합된 선교활동을 펼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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