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잘못 사용하는 말'


축도 → 축복기도:예배 마지막 순서에 목사가 행하는 축복기도를 축도라는 줄임말로 사용하는데, 축도를 한문으로 표기하면 「빌고 빈다」는 뜻이 되므로 「복을 빌어준다」는 의미의 축복기도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


준비찬송 → 찬송: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찬송이 따로 있고 준비찬송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당신 → 하나님:당신은 삼인칭 극존대어이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당신으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 또는 주님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장로교 → 장로교회:흔히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줄임말로 「장로교」라고 하는데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예수교」이지 장로교는 아니다. 따라서 장로회로 하든지 장로교회로 하는 것이 옳다.


-께/께서 → -에게/-이:기도할 때 간혹 「하나님, 우리 목사님께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또는 「목사님께서 선교여행을 하실 때 눈동자처럼 보호하소서」처럼 존대의 주체를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맞추는 경우가 있다. 기도 대상은 하나님이므로 하나님 앞에 인간을 높이는 것은 옳지 않다.


결혼예배 → 결혼예식:가정예식은 관혼상제의 기독교적 예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예배순서를 따른다 해도 결혼은 예배가 아니라 예식이다. 따라서 결혼예배가 아니라 결혼예식, 장례예배가 아니라 장례예식, 추도예배가 아니라 추도예식으로 하는 것이 적합하다.


영결식 → 장례식:영결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이다. 성도라면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있으므로 장례식이라 하는 것이 옳다.


예배보다 → 예배하다:예배를 보는 것은 예배를 구경한다는 의미가 되므로, 예배하다 또는 예배드리다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안식일 → 주일:안식일은 일주일의 일곱번째 날로 유대인들은 금요일 저녁 해가 질 때부터를 안식일로 지킨다. 반면 「주의 날」 주일은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배일로 지킨 일주일의 첫번째 날,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출발한다. 이제 주일 입장에서 안식일을 해석해야 한다.


교회창립 → 교회설립:창립은 처음으로 세운다는 뜻. 교회는 예수님이 창립하신 것이므로,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설립으로 하는 것이 옳다.


당회장 → 담임목사:흔히 기도할 때 「당회장 OOO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달라」고 하는데, 당회 때는 당회장으로 불러야 하지만 평소에는 담임목사로 부르는 것이 옳다.


제단 → 교회:제단은 십자가 밑에 성경을 놓고 촛대를 둔 곳을 말한다. 「우리 제단을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할 때는 「우리 교회에 복을 주소서」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에서 잘못 해석하거나 어렵게 쓰여진 말'


바로 왕 → 바로:성경에는 「바로」(창12:15~20)로 기록돼 있지만 흔히 「바로왕」이라 부르고 있다. 바로는 헬라어로 「파라오」로 애굽 군주에 대한 일반적 칭호. 따라서 「바로」로 부르든지 「애굽의 왕」이라 하는 것이 옳다.


떡 → 밥:「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마4:4)의 말씀에서 떡은 주식을 의미하므로 밥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삼시·육시·구시 → 오전 9시·정오·오후 3시: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달리신 때의 진행과정(막15:25, 마20:5)을 유대인들의 시간개념으로 표현했는데, 삼시는 오전 9시, 육시는 낮 12시, 구시는 오후 3시로 고치면 이해하기 쉽다.


축복 → 복:축복은 「복을 빈다」는 뜻.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주체이므로 「하나님이 축복하시길 원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복주시길 원한다」로 하는 것이 옳다.


패괴(창6:10) → 부패


면막(창24:65) → 면사포


차착(창43:12) → 어그러져서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맞지 않음


훤화(출32:17) → 떠듦


야료(삼상18:10)→ 생트집 잡으며 마구 떠들어 대는 것


흔단(삼하2:27) → 서로 사이가 벌어지거나 다르게 되는 시초나 단서


영채(삼하11:11) → 진영


용정(대하2:10) → 곡식을 찧음


군축(애3:43) → 뒤쫓아가다



'찬송가에서 잘못 쓰여진 가사'


내가 연약할 수록 → 내가 연약하여도:찬송가 411장 3절에 「-할 수록」은 점점 더 연약해져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내가 약하고 병들었을지라도의 의미인 「연약하여도」로 바로잡자.


희미하다 → 환하다:534장 후렴 마지막 구절을 보면 「희미하다」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환하다」로 고치는 것이 해석상에도 옳고 신앙적으로도 옳다. 이는 합동찬송가에 「환하다」로 되어 있던 것을 새찬송가로 바꾸면서 바뀌었다.


기록하셨을까 → 기록하셨도다:532장 후렴 마지막 구절 「기록하셨을까」하고 의문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원문을 그대로 해석한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신앙적으로 볼 때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음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것이 옳다.


속죄받은 후 찬미하겠네 → 나 속죄받았네, 찬미합니다:183장에 「속죄받은 후」라고 단서를 붙였는데, 우리는 이미 속죄함을 받았으므로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고쳐야 한다.


너 → 나:찬송가 가사 중에는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네가 이렇게 하라」는 권유형이 많다. 곧 「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395장의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보다는 「나 시험을 당해 범죄치 않고」로, 또한 36장의 「다 찬양하여라」는 「나 찬양합니다」로 고쳐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께 「내」가 고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찬송하리라 → 찬송합니다:35장을 보면 「찬송하리라」라는 미래형이 쓰였는데 「찬송합니다」라고 현재형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신앙고백적의 의미에서 옳다.




도움말:이송관 목사(제물포소망교회·'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저자), 김승호 장로(대구 봉산교회·영남대 음악대 작곡과 교수), 나채운 목사(전 장신대 교수·'우리말 성경연구' 저자)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