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돌아가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벌써 몇차례의 정리해고가 있었지만 여전히 사내 분위기는 다음 해고대상을 물색하느라 온통 얼어붙었다. 여기저기서 동료를 모함하는 출처 없는 소문들이 떠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도 무거울 수 없었다. 대학 다니는 딸, 올해 대학입시를 치르는 아들이 떠오르고, 자신에 대해선 무작정 신뢰하는 아내가 생각났다. 그 무렵이었다. 올 봄의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던 정 집사(53·서울 S교회)는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이었다.


이틀간의 혼수상태를 지나 정신이 들었을 때 정 집사는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도 스스로 가릴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됐음을 알았다. 가족은 생명을 건진 게 기적이라 했지만 그는 그 기적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에 대해 뒷자리에서 온갖 못 할 소리로 비난하던 동료의 얼굴이 내내 떠오르고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결국 그런 꼴(?)로 그는 퇴원했다.


가족들에게 도움을 줘도 시원찮을 마당에 오히려 없는 것보다 못한 존재가 돼 있었다. 아내가 늘 곁에 있어야 했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역력했다. 그때부터 가정예배가 시작됐다. 아내의 제안에 아이들이 모두 동의했다. 대표기도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 어눌한 발음으로 끙끙대는 나의 기도에 가족들이 눈물 흘리며 「아멘」 했다. 아내와 함께 이웃 교회의 새벽기도에도 참석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그는 한 없는 감사에 그 새벽을 온통 눈물로 적셨다.


『나이 오십이 돼서 비로소 기도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아무 일도 못하는 불구가 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나의 기도로 섬겨야 할 세상이 보였고, 내가 온 몸으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내 어눌한 입술과 눈물로 해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자신을 모함하던 직장 동료)이 떠오르면 입을 다뭅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입니다. 침묵이 훨씬 주님의 뜻에 맞는 기도가 되는 것을 이제 잘 압니다.』


아름다운 지천명(知天命)이었다.




정 집사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기사화 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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