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대로 일하고, 주는대로 먹는다. 보수는 없다. 그런데 기쁘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덕도리 615, 헤비타트(사랑의집짓기운동본부) 의정부지역 제4차 공사현장.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공사현장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여 잠시의 휴식도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공휴일을 이용해 헤비타트 현장을 찾은 이재원씨(26·건축설계사·의정부동부교회).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한 개에 10kg 이상 나가는 철근을 나르고 바닥에 까는 일을 했다. 버팀목으로 사용한 나무에서 대못을 뽑기도 하고, 거푸집 제거작업도 했다. 명색이 건축설계사지만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종이 위에 집을 세우는, 고운 손을 가진 그에게는 여전히 낯선 세계일 수밖에 없다.


『학생시절에 한두번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1당을 5만원이나 받았으면서도 꾀도 부리고, 힘든 일보다는 쉬운 일을 하려고 잔머리도 굴렸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흥이 나 일을 하게 돼요. 열심히 일하는 다른 자원봉사자들 모습에 질 수 없다는 경쟁심리도 생기구요.』


『물론 힘들지요. 며칠 앓아누울 것 같아요. 하지만 함께 무언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회 한구석을 밝힌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아요. 교회 청년부 행사차 이곳에 오게 됐는데,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놀러갈 수 있는 공휴일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재원씨와 함께 자원봉사활동에 나선 한인희씨(22·공익근무요원)의 설명이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집을 짓는 입주자들의 얼굴은 자원봉사자들 보다 한층 밝다. 헤비타트 입주대상자들은 자립정신을 길러주고, 그들의 자존심도 지켜주기 위해 헤비타트가 세운 규칙에 의해 500시간의 의무노동을 채워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들이 의무사항이라서 마지못해 나왔겠는가. 내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사실이 이들을 공사현장으로 불러낸 것이다.


트럭에 야채를 싣고 팔러 다니는 현씨와 보일러 배관일을 하는 김씨를 포함해 오는 11월 입주의 꿈을 보장받은 12가구 가족들은 벽돌 한장한장 쌓아 올릴 때마다 집없이 떠돌아 다니며 겪은 설움 한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가 많다고 세주기를 꺼리던 집주인에 대한 기억, 아이의 울음소리가 바늘방석처럼 아프게 느껴지던 일, 집 비워달라는 소리에 가슴무너져 내리던 순간도 아스라히 멀어진다. 기둥을 세웠을 때는 자녀에게 가난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소망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이제 자녀 앞에 좀더 당당한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거푸집 제거작업이 끝나자 얼추 집의 형태가 드러났다. 오는 11월이면 계획대로 입주대상자들의 보금자리로 손색없이 완공될 것 같다. 아직 시멘트 냄새나는 회색빛 벌거숭이 집이지만 벌써부터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것도 느껴진다.


하루 분량의 작업을 끝내자 자원봉사자와 입주예정자 모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아침에 샴푸했을 머리에 땀과 먼지가 덕지덕지 엉켜있다. 서로의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그들. 그제야 어깨가 뻐근하고 다리도 후둘거리는게 느껴지는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 준다. 상대의 몸에서 후끈한 열기와 땀에 절은 시큼한 냄새가 그대로 전달된다. 기분좋은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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