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편지라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이 아름다움일 수만은 없다. 적어도 이준일(33·고대 법학 강사·온누리교회) 이경화(32·일산제일산부인과 전문의) 부부에게는 그렇다.


결혼 후 3년6개월간 독일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준일씨는 『기차여행 중에 보는 농촌은 아름답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삶일 뿐』이라며, 그들이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은 행위나 편지사연은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컴퓨터에 저장되거나 편지지로 곱게 보관된 편지 속에는 경화씨가 혼자 아들 요한이를 출산하고, 레지던트를 거쳐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는 과정 동안 옆에서 함께 있어주지 못한 준일씨의 안타까움과 준일씨가 3년6개월만에 박사학위(헌법학)를 취득할 수 있게끔 격려와 협박(?)을 아끼지 않은 경화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신도 물론 바쁘겠지만 늘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레지던트 과정을 위해서,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독일생활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비록 멀리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미 하나로 사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94.10.8)


『오늘 요한이 사진을 받았어. 물론 요한이 낙서한 것도 보았고. 당신이 말한 것처럼 눈물이 나올뻔 했지. 그래 그게 피라는 건가봐. 요한이 이름만 들어도, 사진만 보아도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강하게 느껴지곤 하지. ...우리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사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해. 어떤 득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해도 떨어져 사는 일은 절대 없기로 하자.』(97.10.30)


그들 말처럼 「낭만」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외롭고, 지치고, 가끔은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고스란히 담은 그들의 편지는 역설적이지만 「삶」 그대로이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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