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로마와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지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 로마의 여러 도시에 있는 교회들에 이들 편지를 전달했을까?


편지는 인간이 개발해 낸 가장 오래된 장거리 통신 수단의 하나이다. 구두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긴 말이 오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왜곡될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지는 이러한 한계를 많이 극복한다.


편지가 극복해 내야 할 과제는 교통수단의 발달, 곧 편지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매체의 발달과 함께 발달했다.


처음 던진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로마제국의 우편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제국은 원거리의 식민도시나 속주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현지의 총독들과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락을 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래서 잘 발달된 도로망에 중계소, 곧 역참(驛站)을 설치했다. 하루에 270Km를 갈 수 있었던 로마의 이 통신망을 「쿠르수스 푸블리쿠스」라 불렀다.


그런데 사실 바울의 서신이 「쿠르수스 푸블리쿠스」를 통해 전달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명 발달사 일반이 대개 그러하듯, 이것은 군사행정용이었을 뿐이다. 다만 바울의 서신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로마의 잘 정비된 도로교통망이나 해상교통의 덕을 보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 바울이 서신에 우표를 붙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편지의 전달수단은 인편에서 기마배달로, 다시 역마차배달로, 그리고 동력교통수단의 본격적인 발달과 함께, 배와 자동차에서 그리고 비행기로 발전했다.


편지는 가장 오래된 문학 장르의 하나이며 가장 진솔한 사적인 장거리 「대화」의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


그러나 편지의 신속하고 안전한 배달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이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가장 오래된 문학장르의 하나인 편지의 질적인 저하 또는 도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전달수단의 발달, 전달속도의 획기적인 발전 자체가 서신의 직접적인 질적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편지지에 연필로 글을 쓴 다음, 정성스레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과정을 번거로운 일로 생각할 만큼 현대사회의 문화시계는 빨리 돌아간다.


「편지를 쓰고 보내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입에서 나오는대로 상대방에게 전달했으면 더 좋겠다.」 그래서 장거리든 단거리든 가리지 않고 전화가 편지의 위치를 대신하게 됐다.


전화는 편지와는 맛이 다르다. 그래서 전화가 편지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편지의 쓰고 읽는 맛에 더욱 근접한 매체가 바야흐로 확장일로에 있다. 바로 컴퓨터통신이 그것이다. 얼핏, 전달매체가 전화수준으로 빨라졌다는 「발전」외에 더 바쁠 건 없어보이기도 하는 것이 컴퓨터통신과 인터넷 통신이다. 그러나 한껏 멋을 부린 색색의 편지지든, 나름대로 품위가 있어보이는 한지(韓紙)든, 그 편지지 위에 만연필이나 연필, 때로는 붓으로 쓴, 보내는 이의 멋스런 서체까지 서신의 멋에 한몫하는 그 전통적인 편지를 몰아내는 「멋없는」 편지 교환에 내심 아쉬운 사람도 역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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