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말씀…건전한 간증문화 보급

"형, 캄캄한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오늘 아침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이렇게도 홀가분한 걸 그동안 너무 많은 고민과 염려에
가슴 졸였나 봅니다. 그분이 이기신 셈이에요. 다음달부터 선교사훈련에 들
어갑니다. 신기하게도 이젠 그분이 어떻게 우리 가족을 인도해 가실지 도리
어 기대가 됩니다."
얼마전 대학병원 전문의로 자리를 옮긴 김군은 여전히 '이길이냐 저길이
냐'를 놓고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대학시절에 가진 의료선교사에 대한 관
심이 해를 더하면서 어느새 그의 삶 가까이 바짝 다가섰던 게다. 김군과 그
동안 나눈 편지에는 그의 이런 고민이 상세히 담겨 있다. 그리고 얼마전 그
는 지금의 안락함을 벗어 던지고 소외된 땅, 자신이 꼭 서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나겠다는 결심을 내게 알려 온 것이다.
김군이 내린 이 '거룩한 결단'을 접하면서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나온 터널과 같은 어둠, 아니 그보다도 김군과 여기까지 동행해 오신 하
나님의 인력(引力)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었다. 힘의 실체는 여전히 가려진
채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력, 그분의 메시지가 흘러드는
뚜렷한 채널 하나를 나는 발견한다.
큐티(QT·Quiet Time).
김군에게 있어 QT는 마치 하루를 시작하는 조회 같은 것이다. 하나님과
독대가 이뤄지는 시각, 하나님 앞에 서는 이 순간을 그는 '삶의 지성소'라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목해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은 군중들을 향해 흩어지
지 않고 강한 에너지가 되어 내 속을 파고듭니다. 말씀은 나를 고치고 내
속에 자리한 뒤 나를 움직입니다. 나는 그분의 충실한 종이 되고 비로소
'노예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그 시간과 그 장소
는 나를 그분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내 삶의 지성소인 셈입니다."
김군의 'QT론'을 반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QT를 "성경공부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명상도 아닌 것이 성도들의 삶을 수도원 생활로 회귀시킨
다"며 'QT무용론'을 말했다. 그들은 또 "QT 역시 어느 한 때의 유행에 불과
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질 것"이라 했고 "QT가 마치 신앙생
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기준처럼 여겨지는 현상까지 전개되는 걸 보면
분노마저 솟구친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럴때면 김군의 얼굴이 붉어지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
도 삼가며 어색한 웃음으로 반론을 대신했다. 어쩌면 수긍하는 모습처럼 보
이기도 했다. 나중에 김군은 조용히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QT가 유행이라느니, 형식이라느니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해요.
형도 알다시피 우리가 대학부 생활을 할 때 'QT했니?' 라는 말이 인사말처
럼 들리기도 했으니까. 솔직히 그게 싫어서 우린 의도적으로 그런 질문을
하면 '어제 밤새도록 QT(조용히 잠자는 시간)를 가졌다'고 투덜댄 적도 있
잖아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난 그 때 훈련을 받은 셈이에요. 지금 나는
매일 아침 QT를 가집니다. 억지? 그럴 때도 없지 않죠. 그러나 QT를 마친뒤
의 나는 전혀 다른 내가 됩니다. 이제 나의 QT생활은 버릇보다 무서운 생활
이 됐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며, 기도는 기도로 배울 수 밖에 없다. 마찬
가지로 QT는 해가면서 가치를 발견하고 깊이를 더해간다는 걸 김군은 주장
하고 있다. 의료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아니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
게 지도해 오셨음을 인정하는 김군에게 QT는 어쩔 수 없이 '지성소론'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유행처럼 한 차례 휘잉 일어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 같
진 않다. 벌써 30여년 동안 우리나라 교회의 QT문화는 점점 두터워지고 깊
이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학생 선교단체의 몇몇 식자층 사이
에서만 오갔던 것이 한 세대가 지난후 지금, 일반 목회자 및 평신도들과 청
소년 심지어 유초등부와 유치부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QT문화는 보급돼 왔
으니 말이다. QT를 돕는 자료서적만도 공식 등록된 것만 15권에 이른다. 이
제 일어로 영어로 중국어로 번역되어 수출까지 하는 단계로 뛰어 올랐다.
<표 참고>
'QT방'은 이 땅에 뿌리내린 QT문화의 결정체다. 김군의 집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이웃에게 '열린 QT방'이 된다. 대여섯쌍의 부부가
모여 한 주간의 삶을 나누는 모임이다. 신앙과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맨숭맨숭 보내기 쉬운 생활현장에서 하나님의 간섭을 발견하는
이야기들. 가슴을 콱 조여오는 극적 전개는 드물다. 잔잔하고 느린 흐름,
그러나 나는 깊이를 느낀다. 도도히 흐르는 물살이 차라리 두렵기도 하다.
언젠가 장안에서 교인숫자가 많기로 유명한 교회의 철야기도모임에 참석
한 적이 있었다. 이 모임의 말미는 간증시간, 사망선고를 받은 암환자가 치
료를 받은 이야기, 사업이 어느날 갑자기 망했다 일어난 이야기, 스케일이
큰 교회답게 스케일 큰 간증들이 쏟아졌다. 위대한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함
께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나는 한편으로 수축을 느꼈다. 그들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이 다를 지도 모른다는, 아니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지 모른다는
오해까지 든 것이다. 그러나 김군과 함께 가진 'QT방'에서 나는 비로소 간
증할 수 있었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내 인생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그분 안에서 한 없는 자유를 누리는 나, 나는 그렇게 간증했다. 내게도 그
분은 위대하셨고 비록 극적이지 않았음에도 그분은 훨씬 감동적이었다.
이런 다짐을 한다. 내 영혼의 지성소를 통과하지 않고는 하루도 호흡하지
않으리라고. 말과 이론이 건축한 신화를 모두 제거하기 전에는 어설픈 'QT
무용론'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