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력 2023년 5월 23일. 주일이다. 햇살이 눈부시다. 교회가기 좋은 날이
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사이버클릭사'의 통신모듈 'ET-2013'을 머리
에 쓰고, '핸드 컨텍터'를 손에 낀다. 'ET-2013'은 인터넷에 구축된 가상현
실도시 '인터피아'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통신용 에뮬레이터이고, '핸드
컨텍터'는 이용자의 움직임을 감지, 가상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조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보조장비이다.
'인터피아' 접속준비 완료. 소파에 앉아 'ET-2013' 헬멧에 부착된 모니터
스크린을 내린다. 파워 온. 잠시 암전. 눈 앞이 확 밝아지며 'AT&T'사의
초기화면이 나타난다. 'AT&T'는 전세계 통신시장의 80%를 점유한 다국적
통신회사로 나는 1년전부터 이 회사의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다. 구름이 엷
게 깔린 둥그런 지구와 그 주위를 빠른 속도로 선회하고 있는 통신 네트워
크를 단순화시킨 'AT&T'의 로고를 손 끝으로 가볍게 건드리자 패스워드
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암호 입력.
"안녕하세요? 디지털씨. AT&T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서기
2023년 오전 9시 27분 36초입니다. 접속 목표 지점을 알려주십시오." 기계어
로 합성된 여자의 안내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곧바로 눈앞에 나타난 '인터
피아'의 3차원 영상 가운데 '릴리전벨트'(종교지구)를 터치한다. "삐리리릭
……." 가벼운 전자음향과 함께 고밀도 반도체들이 고층빌딩처럼 빽빽한, 갖
가지 도형들과 기계어들이 현란한 네온사인처럼 늘어선 '인터피아'의 공간
속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귓가로는 "쉬-익"하는 음속 돌파
음향과 길다란 잔광을 남기며 전송되는 각종 데이터들이 보인다.
1초가 채 되지 않아 나는 '릴리전벨트'에 도착한다. 내가 출석하는 가상현
실교회 '컴퓨헤븐처치 A-37'은 제7구역에 있다. 모니터 좌측 상단에 있는 3
차원 전자지도를 눈앞으로 끌어내려 제7구역의 '컴퓨헤븐처치 A-37'을 터
치한다.
중세 고딕 양식의 수도원 건물을 21세기 '사이버아키텍춰' 양식으로 변형
시킨 '컴퓨헤븐처치 A-37'은 언제보아도 아름답다. 5년째 이 교회를 담임하
고 있는 김 목사님은 교회 주변에 싱그러운 사이프러스 참나무들과 일본식
정원양식을 도입한 자그마한 연못들을 군데군데 만들어놓아 가상공간답지
않은 전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다. 20세기적인 김 목사님의 취향을 엿
볼 수 있다.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미국 산호세 '디지털뱅킹은행'에 예금돼있는
내 온라인 예금구좌에서 20달러를 인출해 교회 구좌로 입금시킨다. 교회 안
에서는 은은한 전자올겐 소리가 들려온다. 예배가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오
늘도 지각이다. 나는 서둘러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강단에는 김 목사님의
'사이버 안드로이드'가 설교를 하고 있다. '사이버 안드로이드'는 디지털로
합성된 일종의 분신으로 가상현실 속에서 김 목사님을 대행한다. 목사님의
오늘 설교는 다소 지루하다. 지난 금요일 전자우편으로 배달된 금주 설교
내용을 미리 본 탓이리라. 나는 그만 깜박 졸고 만다…….
물론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는 이런 식으로 가상
현실교회에 접속해 예배를 드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4월6일 인터넷에는
'인터넷 열린교회'라는 사이버교회(인터넷 상의 가상교회, Cyber Church)가
모습을 나타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사이버교회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구
연직 목사(68)는 이 교회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뇌졸증으로 활동이 불가능해
인터넷을 통한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이버교회의 등장을 놓고 교계에서는 신학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
넷을 통해 설교하고 헌금조차 온라인을 통해 받는 사이버교회에 대해 신학
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류가 배제된 채 메시지만 남아있는 불완전
한 형태의 교회'라며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정부, 기업체의 후원에 힘입어 '가상
현실교회'는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내에서 상영됐던 영화
'코드명 J'는 미래의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감독한 로
버트 롱고는 그러나 눈부신 가상현실로 아름답게 포장된 미래세계 속에 더
욱 폭력화되고 치유 불가능한 질병에 시달리는 미래인의 모습을 삽입시킴으
로써 기술력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
달한다.
교회는 이런 미래의 모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저 무관심하게 앉아
있는 한국교회 앞에 어느날 이런 전자우편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가상현실
교회 '컴퓨헤븐 A-37'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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