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라이프]조직, 장애인 선교 꿈 잉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한강쪽으로 위치한 반포동 일대 아파트촌. 숨
막힐 듯 빽빽한 콘크리트 사이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봄의 매신저 개나리와 목련이 여기저기서 화들짝 피어있다. 복잡한 건물들
사이에 노란색과 흰색의 조화가 그나마 숨통을 트워주며 계절의 변화를 전
해주고 있었다.
11년전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훈련도중 부상으로 전신마비 장애인이된
불운의 체조선수 김소영(27)씨가 살고 있는 신반포 4차 아파트 일대에도 봄
빛은 찾아오고 있었다. 유독 개나리꽃을 좋아해 봄이오는 소리는 누구보다
도 빨리 감지한다는 김소영(남서울교회)씨는 그 표정에서도 벌써 봄기운을
맞고 있었다. 11년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말끔히 거둬내고 봄을 맞는 새싹들
처럼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시 체조요정으로까지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17살 소녀의 일을 모르는 사
람은 드물 것이다.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금메달 리스트로 꼽히며 온국민
의 성원을 한 몸에 받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장애인이돼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2년 4개월의 병원생활과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그밖에도 나날이 견
딜 수 없는 삶에 대한 미련이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극한 상황으로까
지 이어졌다.
소영씨가 신앙을 갖게된 것은 사고가 나고 병원에서 마취가 깨어나면서 부
터였다. 중환자실에서 정신이 돌아오자 이모의 전도를 받고 이상하게 마음
이 평안해짐을 느끼면서 신앙을 받아드렸다. 그러나 몸이 아프고 육체적 불
구를 정신적으로 극복하지 못했을 때는 신앙의 참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려웠
다. 그러나 모든 과거를 포기하고 하늘의 소망에 뜻을 두면서 좌절도 극복
할 수 있었다.
김소영씨는 요즘 '영 라이프'라는 장애인선교단체를 정식단체로 출범시키
기 위해 전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영씨는 94년말 미국의 청소년선교단체인
'영 라이프'의 도움을 받아 선교단체를 조직하고 95년과 96년, 그리고 지난
겨울 등 세차례에 걸쳐 장애인 스키캠프를 열었다. 미국 영 라이프 단체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캠프를 마쳤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리
고 언제나 남들의 도움만 바랄 수도 없었다. 물론 주변에서 많은 도움은 있
어야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기 위해서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믿고있다. 소영
씨는 그래서 영 라이프를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프로
그램 운영으로 이끌어갈 계획이다.
요즘은 법인체 구성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한계가 많
다. 재정과 인력이 모자라고 몸이 그렇다보니 하는 일도 자연히 늦어지고
있다. 몇몇 돕겠다는 분들도 있지만 우선 장애인들을 위해 순수한 이사회가
구성되기까지는 본격적인 활동은 뒤로 미룰 계획이다.
봄의 향취가 막 피어나는 아파트 숲속을 찾아 오후 늦은 시간 산책을 나왔
다. 공기는 아직 찼다. 소영씨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직접 느
낄 수 있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봄꽃 중에서도 유독 좋아한다는 개
나리를 배경으로 사진 몇장을 찍고 근처의 뉴코아백화점에 들렀다. 비빔밥
한 그릇을 불편한 손으로 비웠다. 항상 불편하면서도 티없는 눈웃음이 인
상적이다.
체조에 대한 미련을 "그리운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는 심정"이라고 표현하
는 김소영씨는 체조인으로서의 인생이 지나면 현모양처가 되겠다는게 꿈이
었다. 이제 그 꿈들을 접고 새로운 소망의 세계로 들어와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김소영씨는 앞으로 불운한 체조선수가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작은 천
사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하찮은 금메달이 아니라 하늘나
라의 면류관을 위해 체조선수때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며 희망을 키
우고 있다.

<못다한 이야기>
김소영씨는 요즘 퍼즐맞추기 게임에 몰두해 있다. 그속에서 자신만이 느끼
는 인생이 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인생을 배우는 기쁨이다. 어떤때는
식사도 거르고 날밤을 세우기도 하면서 2,3일을 보내기도 한다. 마비된 수족
으로 수천 쪼가리나 되는 비슷한 모양의 그림들을 맞춰 나간다는게 쉬운일
이 아니다. 지독한 인내와 끊기가 있어야 한다.
"퍼즐의 묘미는 많은 것중에 관련이 있는 하나를 찾고 그 하나하나가 모여
서 전체를 이루는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부분만 보다가 맞춰가다보면 전
체를 보게되고 완성된 모양에서 또 하나하나를 보게 됩니다".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지만 소영씨가 퍼즐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인생에 대
한 느낌은 단순하다. 하나하나를 열심히 하다보면 뜻을 이룰 수가 있고 전
체가 보람된다는 것이다. 구겨진 육체지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일이 분
명히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야할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영 라이
프'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마지막 찾은 인생이고 복잡한 퍼즐을 맞춰가는
것처럼 그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자신이 몫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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