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주보는?
한국 교회가 주보를 언제 처음 발행했는지 그 정확한 연대를 확인할 만한 기록이나 사료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1938년 9월 18일 발행된 승동교회 주보가 10권 38호 총권 450호인 것으로 봐서, 이미 1928년경에 승동교회에서 주보를 발행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현재 발굴된 주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서울 새문안교회 주보(新門內敎會週報, 1932년 10월 30일, 제1호), 서울 수표교회 주보(1933년 8월 6일, 제58호), 전주서문교회 주보(젼주셔문밧교회쥬보, 1935년 2월 24일, 제2권 8호) 등이다. 제58호까지 매주 빠짐없이 발행해왔다면 서울 수표교회 주보는 1932년 7월 3일에 첫호가 발행.을 것이며, 새문안교회 첫주보 창간사도 새문안교회 주보에 앞서 이미 다른 교회(들)에서 정기적으로 주보를 발행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30년대에는 이미 주보가 어느 정도 보급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새문안교회 주보 창간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물론 이런 주보와 순서 같은 것이 벌써 과거에 있어서 등사나 인쇄로 여러 번 발행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와 같이 내용과 체제를 주밀(周密)하게 하고 정기로 발행하려고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요 비롯이 아닌가 한다. 이 새문안교회는 경성시내에서도 큰 교회요 전선 어느 교회에 비하여 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중요한 입장에 선 교회로서 교회주보하나 정기로 발행 못하는 것이야말로 유감천만으로 생각하여 청년들의 분발로 주보를 매주일 발행하기로 결심하였다.』전주서문교회 주보는 1934년에 1권 1호가 나왔을 것이다.
어쨌든 1930년대초에 주보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초기 주보의 내용
새문안교회 첫주보를 다시 옮긴다. 『이 주보의 사명(使命)은 주일예배, 저녁예배, 삼일예배의 순서등이 주요한 기사며 그외 교회내의 일반 소식과 광고할 것과 부인회 찬양대 청년회 활동을 이 주보를 통하야 일반 새문안교회 교우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한다.』청년면려회에서 발행을 시작한 새문안교회 주보에는 주일예베, 저녁예배, 삼일예베 순서와 교우 동정과 함께 면려청년회 임원·회원 명단과 면려회 동정이 실렸다. 셔문밧교회쥬보에도 주일 아침·저녁예배 순서와 삼일예배순서가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인전도가 헌금찬송 소식 광고가 들어 있다. 이 주보의 소식 한토막. 『병고. 됴선희씨와 박도관씨와 장환택씨의 어린 아해는 심한 고통에 잇고 그외에 감긔로 알난이도 잇슴네다. 긔도하여 주시기를 바래나이다.』정감이 느껴진다.
예배에 참여한 이들에게 예배 순서를 알려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주보의 기능. 그런데 새문안교회와 전주서문교회 주보 첫머리에는 담임목사 또는 당회장 누구누구가 없어 새삼스럽다.

◇어떻게 변하고 있나?
주보는 다량의 인쇄물을 간편하게 복제할 수 있는 인쇄·복사 기술 수준과 함께 발전하고 변천했다. 이미 구한말과 일제시대 도입된 근대적 인쇄 기술은 주보에도 그대로 새문안교회 전주서문교회 주보 모두 활판인쇄기로 찍어낸 것들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기름종이에 철필로 직접 글을 쓰고 간단한 그림을 넣어 복사해 내는 등사판 주보도 있었다 일본말로「가리방」이라고도 했던 이 인쇄방식은 1980년대 중반지도 일부 남아 있었다.
주보 제작이 더욱 간편해지고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복사기의 발전도 한몫한다. 우리나라에서 복사기가 대중화된 것은 1975년 처음 시판된 제록스 건식복사기의 등장과 함께 한다. 이전에도 습식 복사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특수용지를 원본으로 사용해야 하는 등 대중화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성도교회와 내수동교회 대학부를 시작으로 청년·대학부에 주보 문화가 확산될 수 있었던 이면에 이 건식 복사기의 보급이라는 하부구조가 한몫을 했던 것이다. 활판 인쇄나 등사 인쇄로는 분명 한계가 있는,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편집을 한 원본을 짧은 시간에 대량 복사할 수 있는 기술이 보급됐다는 것은 창작·독창성과 대중성을 한꺼번에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이 문화에 어울렸다.
1990년대초부터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전자출판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필경을 고집하는, 곧 손으로 직접 쓴 글씨의 그 독창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청년대학부 같은 교회내 작은 공동체 주보와는 달리 정형성을 요구하는 일반 교회주보의 자체 제작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일반 워드프로세서로도 왠만한 편집은 할 수 있게 되면서 교회가 직접 주보(원본)의 내용과 틀을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손쉬운 편집 기술은 한편으로는 무절제하게 주보의 지면을 확대하는 역기능을 가져오기도 했다. 교회의 예배 순서와 간단한 교우 동정 정도를 알리던 너댓 쪽 짜리 주보의 절제된 지면 사용을 넘어 주보인지 신문인지 전도지인지 교회 홍보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버렸다.
결국 이 시점에서 교회 주보는 다시 한 번 분화·발전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주보에 마구잡이식으로 모든 것을 우겨넣어선 주보의 절제미를 상실한다. 그렇다고 가능한 기술력을 포기하고 구닥다리를 고집할 수 만도 없다. 새로운 변신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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