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천주교와 자유주의적 개신교 교단들, 그리고 시민인권단체 등이 연대하여 추진해 온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조만간에 국회에서 입법화를 위한 토론과 심의에 들어갈 전망이다. 사형제도폐지는 보수적인 한국사회구조를 재편하기 위하여 진보주의자들이 민변소속 국회의원들 및 참여정부와 연대하여 진행시키고 있는 치밀하고 조직적인 사회재구성전략 항목들 가운데 하나다.
 이미 필자는 '기독신문' “신학논단”(2000년11월29일자)과 '목회와 신학' “신학논쟁”(2005년12월호)을 통하여 사형제도 전면폐지론이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의적 살인에 대하여 사형을 집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홍수 후에 노아가 인류를 대표하여 받은 언약의 약정들 가운데 하나로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명령이다. 천주교와 진보적인 교단들의 합의나, 사형제도폐지론을 지지하는 어떤 다른 대의명분도 이 명령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다. 설사 국회에서 사형제도폐지론이 통과된다 해도 이 말씀의 보편적 적용성이 효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법과 괴리를 보이고 있는 세상법에 대한 비판과 경고의 말씀으로 그 권위를 계속하여 유지할 것이다.
 사형제도를 유지하자는 주장은 신정론(神政論)을 말하는 것인가? 신정론이란 그레그 반센(Greg L. Bahnsen)에게서 볼 수 있듯이 모세의 율법 가운데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신정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법체제를 다룬 실정법적 조항들을 시대와 정치적 상황의 차이를 무시하고 현대사회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모세의 율법 안에도 다양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형을 집행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조항들이 있다. 그러나 창세기 9장 6절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사회를 위한 실정법이 아니다. 이 조항은 아담의 언약과 동등한 차원의 인류전체를 위한 보편적인 약정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한 결혼질서, 수고를 통하여 식물을 먹으며 잉태의 고통을 통하여 아기를 출산하는 것, 산 동물을 음식물로 먹도록 규정하신 조항 등이 인류사회 전체를 위한 보편적 약정인 것처럼, 고의적 살인에 대한 사형은 인류전체가 준수해야 할 보편적 약정이다. 모세의 실정법에 근거한 사형제도와 창세기9장6절에 근거한 사형제도는 그 비중이 다르다. 창세기9장6절이 규정한 사형제도를 유지하자는 말은 이 세상의 정치체제를 신정체제로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시대와 장소와 문화에 따라서 정치체제나 법체계가 물론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하지만 역사 안에는 결코 달라져서는 안될 공정한 법체계의 최소한의 역사적 표준이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뜻이 고의적 살인에 대한 사형제도존속을 주장하는 논증의 저변에 깔려 있다.
 사형제도가 유지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인 이유는 사형제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이유를 예증해 주는 유일한 역사내의 법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는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죽음이었다. 역사상에 존재하는 사형제도는 이 원칙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살아있는 원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장치다. 만일 사형제도를 역사로부터 완전히 퇴출시켜 버린다면 이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예를 역사 안에서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원칙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원시사회의 유물(遺物)로 전락하고 만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원칙과 은혜로 값없이 오직 믿음을 통하여만 주어지는 사랑의 원칙은 동전의 앞뒷면이며, 전자가 누락된 후자는 값싼 은혜로 전락하고 만다. 공의의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지금까지 공존해 왔고 영원토록 공존할 것이다.
 사형제도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행위에 대한 유일한 공정한 형벌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사형제도폐지론자들은 무기징역이 사형제도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라는 반론을 펴기도 하지만 이 반론은 곧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 만다. 사형수가 사형당하는 장면이 너무 비참하기 때문에 그 비참함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것인데, 그 무기징역이 사형보다 더 비참한 형벌이라면 차라리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어떤 근거에서 성경이 규정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려고 하는가?
 사형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어서는 안된다. 사형수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사형수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인권과 정의로운 형벌시행의 요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은 창세기 9장 6절의 취지를 살려서 사형제도를 보다 더 확대적용했는데, 오늘날은 사형제도폐지라는 인본주의적인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하여 보편적 약정인 창세기 9장 6절마저도 폐기하고자 한다. 어떤 태도가 과연 성경을 바르게 읽고 적용하는 태도일까? 오판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한번 오판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사형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성경말씀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전면폐지론으로 가기보다는 고의적 살인 이외의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제도를 다른 형벌로 가능한 한 대체하되, 고의적 살인에 대하여는 집행요건을 더욱 강화하여 오판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 나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 차선일 것이다. 사형제도는 존속시키되 집행은 어떤 경우에도 아예 하지 말자는 생각은 법을 아예 사문화시키자는 뜻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법의 집행요건을 강화시키는 것과 집행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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