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재文巢齋에서 (23) 여운형


2002년 8월 14일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남북민간차원의 8.15 공동행사(민족통일대회)에 참가할 북측 대표단 116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서울에 왔다.
이들 가운데는 기독교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셋째 딸인 여원구 씨(74)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 여운형 선생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서 태어났다. 14세(1899)에 배재학장에 입학하여 3학년 때(1901) 자퇴하고 홍화학교로 전학하였으며 다시 우무학장으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을사보호조약이후 1905년에 민영환이 자결하자 자극을 받고 고향에 돌아가 광동(光東)학교를 설립, 청년들을 가르치는 한편 기독교신앙을 선도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양평에서 활동중이던 선교사 클라크(A. D. Clark, 郭安全)와 만나게 되었으며 그의 조사로 임명되었다. 특히 그는 상동교회의 지하운동에 영향을 받아 이듬해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는 한편 클라크를 따라 간도여행중 신흥무관학교를 시찰하였다. 그러나 1914년 29세에 신학교를 중퇴하고 언더우드의 추천을 받아 중국남경 금릉대학 영문과에 진학하였다(기독교대백과 11권 460쪽). 그는 서울 승동교회에서 2차에 걸쳐 조사로(1908년 가을-1910년 봄, 1911년 여름-1913년 겨울) 시무하였다(승동교회 100년사,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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