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다. 성경은 그 양심을 「우리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법」이라 정의한다. 하나님은 기독된 모세의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기 전에 우리의 양심에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두신 것이다. 어떤 이는 「양심은 하나님의 출장소」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거나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 맨먼저 양심의 소리를 듣게된다. 이때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를 듣고도 둔감하거나 반복하면 그 양심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기능상실의 지경에 이르고 만다. 디모데전서(4:2)에선 이렇게 된 양심을 일컬어 「화인 맞은 양심」이라 했다.


지난번 치른 강도사고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저버리고 양심의 소리에 둔감해서 생긴, 화인 받은 양심의 소행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성총회가 맡긴 최고의 시험기관인 고시부가 그것도 목사란 성직을 받기 위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인 고시현장에서 감히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저들이 천국을 포기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된다. 그렇지 않다면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님을 판단했던 사단이 이번 고시의 부정에 연루된 이들의 마음에도 들어가 고시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우리 총회의 위상에 중대한 훼손을 입힌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보다 자세히 이같은 강도사 고시의 부정 발생원인을 짚어 보면 몇가지 원인들이 발견된다.


첫째 돈과 연관될 수 있다. 말하자면 응시자가 뇌물공세로 시험관의 마음을 흔드는, 저질적인 세상 방법이 신성한 강도사 고시에 등장한 것이 아닐까 여겨지는 것이다. 둘째는 정실관계에 기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응시자가 자기 교회의 교육전도사이거나, 멀고 가까운 친척이거나, 또 안면이 있는 관계일 경우다. 셋째는 총신의 교육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연히 총신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학생들의 책상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거의 모든 책상에 시험의 부정행위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염된 환경에서 교육 받은 사람들이라면 강도사 고시에서 정직성을 기대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 아니가. 이는 신앙적인 확신과 소명감이 없는 이들을 엄격히 가려내지 못하고 입학시키기 때문이며,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체면과 수치심에도 관련이 있다. 강도사 고시에 응시하는 사람은 대부분 각 교회의 교육전도사들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가 강도사 고시에 단번에 합격하도록 열심히 기도로 성원하고 격려한다. 심지어 그를 위한 특별기도회까지 가지기도 한다. 이만큼 고마운 교회에 대해 불합격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체면상 견디기 힘든 아픔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심리가 부정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고도로 발달한 통신수단을 악용하는 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가령 시험관과 응시자가 각각 핸드폰을 휴대하고 엄밀히 교통하여 문제를 누설시킬 수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방법들이 동원될 것이며 원인들이 개입될 것이다.


총회는 이러한 고시 부정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의 심각성을 운운하며 제도 개선과 규칙 제정을 들고 나온다. 이번 총회에서도 강도사 고시 제도 개선을 7인위원회에 맡겨 연구하기로 했으며, 고시 부정사건의 진상조사를 15인 위원회에 맡기고 10월 첫주 기독신문에 발표하도록 했다. 반드시 제도는 개선돼야 하고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오히려 만시지탄이 없지 않다. 응시자 접수과정에서부터 출제와 시험감독, 체점 및 사후처리방식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규정들이 필요하다. 또 그 규정에 의해 일관성 있는 고시행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서기 홀로 응시자 명단과 제출과목 등 고시의 제반 서류를 독점 처리하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대신 총회 사무국을 경유하고 고시부 임원이나 실행위원이 한 팀으로 관리하게 해야 한다. 출제와 체점 역시 총신 교수들과 협력하여 진행해야 하며, 한사람이 출제하거나 체점해선 안된다. 출제자를 복수로 하는 것과 함께 채점 결과에 대해서도 교체 검토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키는 사람 열이라도 도둑 하나 못 당한다는 말처럼 강도사 고시의 부정이 결코 제도의 개선이나 규칙의 수정 등으로만 근절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기능을 회복할 때만 가능해진다. 양심이 마비된 사람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외적 기준인 성경과 내적 기준인 양심의 소리를 듣는 영성의 소유자만이 이 일을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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