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조만식

물질의 풍요가 정신의 풍성함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물질의 풍요는 정신의 빈곤을 초래한다.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풍요로운 시대는 쾌락이 흘러넘쳐 순수한 정신의 빛남과 날카로움을 상쇄한다. 그래서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과거의 역사적 인물을 되새기는 것은 결국 숭고한 정신에 대한 반성적 회고다.


송삼용 목사(세광교회)가 갑자기 <고당 조만식>(생명의말씀사)을 들고 나타난 것은 아마도 그런 저간의 맥락을 따른 것일 것이다. 고당 조만식(1883~1950)은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남강 이승훈 등과 함께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다. 무저항 민족주의 운동으로 한국의 간디라고도 불렸다. 
송 목사는 이런 조만식 선생의 일대기를 다양한 자료와 상상력을 통해 팩션의 형태로 재구성한다. 역사적 사실이란 차가운 틀 속에 갇혀 있던 동상에 호흡을 불어넣고 온기를 주어 바로 곁에서 말하고 미소짓는 스승으로 살려낸다. 거기에 기존의 시각과 다른 신앙인으로서의 조만식 선생에 초점을 맞춰 평양 산정현교회의 장로이자 기도하는 신앙인 조만식으로 독자 앞에 제시한다. 
조만식 선생이 살았던 시대의 고단함과 어려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그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민족적 자부심과 신앙적 양심을 곳곳하게 세워갔던 그의 모습들은 참다운 스승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다양한 일화 속에 드러나는 그의 모습들은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탁한 시대를 어떻게 거슬러가야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모델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어렵고 혼란한 사회 속에서는 그가 제시하는 삶의 지표들이 더 소중한 의미로 다가선다. 하지만 그런 꼿꼿함 속에서도 고아원을 운영하거나 3등 열차를 애용하던 인간적·서민적 모습들은 그의 따스한 일면을 새롭게 보여준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부인에게 건네주었던 봉투 속의 머릿카락은 비극적 시대를 살아갔던 한 개인의 애절함까지 담고 있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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