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지냈습니다. 설은 단순히 명절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한 가족이고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설의 사회적 기능과 의미는 만약 설을 쇠지 않고 지낼 경우를 상상해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시골서 자라도 일찍 큰 도시로 가 공부를 하고, 유학을 가고, 핵가족을 꾸리고, 이민을 가는 등 제각각의 경험과 삶을 쌓는 이 시대에 1년에 한 번 가족 친지가 만나고 교류하고 오늘이 있기까지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는 날이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 가족, 친척, 이웃 그리고 나라가 큰 힘을 필요로 하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을 구심축으로 하고 무엇으로 결속을 다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이유에서 설은 거의 100년 가까이 수난을 겪어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력을 신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명절로 공식화했고, 설은 구정이라며 내몰았습니다. 그래서 섣달 그믐 전 한 주간은 떡 방앗간이 강압에 의해 문을 닫아야 하는 시련도 있었습니다. 설날 아침 흰 옷 입고 세배 다니는 사람들을 왜경들이 트집을 잡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에도 미국 문화에 치우친 이승만 정부가 양력 중심의 정책으로 신정 사흘 연휴를 법제화했고, 전통문화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박정희 정부는 설을 공휴일에서 빼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군부정권이 민심을 얻기 위해 설을 되살리긴 했습니다만 설의 진정한 의미와 기능을 생각지 않고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다루기는 마찬가지였다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다루어 왔는지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어느 민족이 스스로 역량을 발휘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민족정신과 민족 고유문화의 창조적인 계승 발전에 뿌리를 두어야만 합니다. 또한 유구한 역사 속에 이어 져 온 가치와 문화는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민족 존립의 근거이자 정당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21세기는 민족과 전통적 유산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정보과학 기술과 국제화에 의해 우리의 삶과 문화는 국경과 지역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민족을 담보하고 지켜나갈 것인가 새롭게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것은 전통 문화 유산을 이해함에 있어 인색해 온 한국 교회에게도 전향적인 전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세계 복음화의 버전을 이야기하고 국제선교회, 세계선교회라는 이름의 거창한 구호들은 난무하지만 한국 사회 속에서의 뿌리는 정작 100년 만에 말라비틀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민족의 복음화와 이 나라의 성시화가 이런 바탕에서 가능할 것인가? 더 나아질 것인가 어려워질 것인가? 신앙적 비전과 우리 전통의 접목과 융합을 열린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을유년을 맞는 우리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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