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발천사 최춘선’


거친 맨발에 엉성하게 쓴 전도 문구 판을 목에 걸고 지하철에서 소리치며 다니던 할아버지. 꽤 오래 전이지만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다니던 그 분을 한두 번 뵈었던 기억이 난다. 최춘선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며 김우현 감독의 카메라로 되살아났다. 책과 함께 나온 DVD를 지난 연말에 구입해 놓고는 어제야 가족들과 함께 보았다. ‘김우현 다큐멘터리 팔복 1 : 맨발천사 최춘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분의 전도는 요즘엔 통하지 않는 옛날 방식, 아니 원시적이었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전도가 결코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극장’ 등 공중파 방송 다큐멘터리로 인정받은 김 감독이 그 분의 전도에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서나 책과 디브이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너무도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잡지의 사진과 문구를 오려붙인 독특한 전도지를 동네 전봇대에 붙여놓고 엉성하게 종이에 쓴 영생복락, 예수천당, 만인구원을 모자에 끼우고 가슴에 붙였다. 50년간 미룬 노예해방, 38선 직통 해방을 외치고 사람들을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미스 코리아 유관순, 민영환, 이순신이라며 “Why Two Korea?”를 소리쳤다. 김 감독의 해석으로는 유관순과 안중근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진리와 자유를 위해 자기를 내던져 희생한 분들이 진정한 한국인이라면 왜 두 개의 코리아로 분단된 조국이 있겠느냐는 외침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통일이 될 때까지 신발을 신지 않는다며 30년을 맨발로 다녔다. 그래서 김구 주석과 함께 활동한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면서 도장만 찍으면 연금이 나오고 오남매가 대학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는데도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과 북의 분단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고 보상을 받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60년대에 자가용이 다섯 대였고 김포 공항 일대의 수만 평 땅을 포기한 것도 그 분이 말하는 대로 “내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이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는 빵을 노숙자들과 나누고 자원봉사를 했다.
사람들이 그를 노망이 들었다거나 미쳤다고 비웃었는데 그 옛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의 행적을 두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광야에서 십 수 년을 살면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며 회개하라고 외치던 설교자의 모습이 최춘선 할아버지와 오버랩된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그럴 듯하게 사는 삶을 포기한 세례 요한처럼 할아버지는 목사이면서도 그 삶 대신 외로운 전도자의 길을 걸었다.
김 감독에게 “충성은 열매 가운데 하나요”라고 말하며 사라진 할아버지는 수원행 전철에서 전도하다가 의자에 앉아 조용하고 평화롭게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다. 전도하다 죽겠다는 소망과 사명을 이룬 것이다.
자녀들은 할아버지를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906호에 모셨는데 비문에 이렇게 적혀있다. “일제 치하 암흑기에는 나라의 광복을 위해, 광복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과 평화를 꽃피우기 위해 애쓰신 맨발의 전도자 아버님의 그 뜻과 믿음을 저희 자손들이 이어받겠습니다.”
최바울 목사는 아버지가 왜 그런 길을 걸었는지 말했는데 그 말이 계속 가슴을 울린다. “늘 그러셨지요.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너희들이, 사람들이 미친 거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예수를 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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