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의 총회를 위한 제언

이 어려운 때에 여러 총대님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 교단과 더불어 산하 교회들의 발전에 있어 여러분의 영향은 참으로 절대적인 것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그것은 여러분이야말로 우리 교단의 「중견 지도 세력」인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중견 지도 세력권」에 있는 자들의 책임이란 막중한 것입니다. 국가나 교회의 갱신은 주권을 잡은 지도자들을 통하여 그 성패가 좌우 됩니다.


이것이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의 교훈입니다. 일반 민중들의 질이 아무리 좋아도 주권층이 잘못되면 그 나라와 그 사회의 소망은 없습니다. 근자에 어떤 학자가 <비록 윗물이 흐릴지라도>란 제목의 책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그 책의 논지가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아랫물이 맑을지라도 윗물이 흐리면 그 전체는 마침내 흐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갱신」도 지도자들의 갱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예컨대 교회의 대표권)에는 또한 무거운 책임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줄 압니다.


요사이 어떤 중견 목사님들은 힘을 모아 교회 갱신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도 기뻤습니다. 결코 유명무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중견 지도자들, 그 자신들의 갱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도 그 책망의 대상은 일반 서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상은 치리자들과 제사장 그리고 장로들이었고 또는 당시의 지도세력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했다면 그 나라, 그 사회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한 국가의 멸망도 단순히 외적의 침입 때문인줄 아는 자가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안에서부터 붕괴 조짐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은 곧 중견지도자들의 갈등과 타락입니다. 이것이 예외 없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서양의 대 로마 제국이나 동양의 대 당 제국도, 우리 역사의 통일신라까지도 다 그렇게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오늘의 우리 교단도, 우리 교회도 그 갱신은 지도자 여러분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라기는 지도세력인 여러분들이 먼저 갱신에 앞장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교회들이 따라갈 것입니다.


지난 해만 하더라도 우리 총회는 임원 선거로 잡음이 많았고 또 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근심했습니다. 예컨대 선거 비용이 무려 몇억대를 넘었다느니, 또는 그렇지 않다느니 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일도 많았고 갈등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여론의 소지는 근본적으로 없어야 될줄 압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것은 깨끗한 선거란 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는 안됩니다.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구조악」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모든 제도를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제도적으로 한 점의 의혹이 없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단도 「선거공영제」를 도입했습니다. 그것이 아주 제도화 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개인들의 득표운동은 절대로 금하고, 모든 정견발표와 의사 표시는 교단기관지(기독신문)를 통해서 하고, 당사자들의 이력과 업적과 또는 공헌도를 일반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총회가 평가하여 발표한다면 공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득표선전은 막을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목사나 장로들의 세미나 같은 것은 선거에 이용되지 않도록 시간적으로 잘 배려해야 될 것입니다. 선거에 혹시 비용이 든다면 총회적인 헌금으로 충당 될 수 있는 줄 압니다. 한 사회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집권세력의 도덕적 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투명한 제도적 개혁이 뒤따라야 함은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의 변함없는 교훈입니다.


다음 또 우리 교단의 큰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동서 분열의 원인이 되는 지방색 또는 「지방 이기주의」일 것입니다. 이것 또한 어떤 「제도화」가 필요한 줄 압니다. 어떤 「권리」를 한 지방이 독점하려는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제도」를 연구해야 할 것 입니다. 여기에서 그 방법을 말하기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 원하는 것은 큰 지역의 다수가 적은 무리를 안중에 두지 않는, 그러한 독선을 극복하는 어떤 제도 또는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참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도 교회도 화평하게 되고 기쁜 활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건투를 바랍니다.


김희보 목사<전 총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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