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된다. 1932년 소련에서 태어난 타르코프스키는 84년 창작의 자유를 찾아 이탈리아로 망명했고 2년 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영화 7편은 모두 세계영화사의 재산목록에 올라있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타르코프스키의 영상은 책을 읽듯이 꼼꼼히 보아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칸영화제서 4개 부문상을 받은 '희생'은 타르코프스키가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으로 완성한 영화다. 그는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시점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중 아리아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선율에서 막이 오르면 주인공 알렉산더 교수가 벙어리 아들과 함께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알렉산더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사이에서 종말을 보게 된다.
알렉산더는 생전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재앙이 현실인지 꿈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알렉산더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 재앙을 막았다는 점이다. 영화 속의 위기는 핵전쟁으로 나타나지만 인간성 상실과 문명의 붕괴, 인류의 파멸까지를 포괄한다.
서원한대로 자기 집을 불살라버린 알렉산더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카메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불길에 휩싸인 저택을 오래도록 잡아내고 있다. 이 장면은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번제'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면은 첫 장면으로 되돌아가고 알렉산더의 아들은 말문이 트인다. 나무에 물을 주는 아이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앙상한 나무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놀랍게도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 위로 햇살이 가득하다. 희생은 마침내 기적을 낳은 것이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정도로 타르코프스키는 신앙의 아들이었다. 작품마다 인간의 영성(靈性)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핍상태에 있는가를 확인시킨 그는 사랑과 아름다움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주여, 내 삶의 주인이시여, 내게서 나태와 낙담, 지배욕과 공허한 잡담들을 거두어 주시고 순결과 겸손, 인내와 사랑의 정신을 내려주소서"라는 타르코프스키의 기도는 탐욕의 밧줄에 매달려 살아가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박평식<영화평론가. 성남 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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