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전체 신학적·주제적 통일성에 부합한지 여부 강조 통일된 전체로 해석할 때 삶의 이슈에 적용시킬 수 있어

미국 복음주의 구약학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성경신학자 폴 하우스(Paul R. House) 박사가 한국을 찾아 국제개혁신학포럼과 한국신학정보연구원(원장:김정우)에서 잇따라 강연했다.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국제개혁신학포럼에서 폴 하우스 박사는 ‘구약과 신약에서의 주의 날’을 주제로 한 사흘간의 강연을 통해 요엘 아모스 스바냐 선지자를 중심으로 구약의 ‘주의 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또한 10월 27일에는 한국신학정보연구원 학술 세미나에서 ‘구약신학 해석학’을 발표했다.
폴 하우스는 스바냐 주석(Zephaniah: A Prophetic Drama, Sheffield Academic Press, 1989), 12소선지서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Twelve, Sheffield Academic Press, 1990), 열왕기 주석(1, 2 Kings, Broadman & Holman, 1995), 구약신학(Old Testament Theology, IVP, 1998) 들의 저자로 복음주의 구약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WBC의 예레미야 애가 주석(Lamentations, Nelson, 2004)을 집필하여 그 학문적 업적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폴 하우스와의 인터뷰는 장세훈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가 가졌다.   ▲장세훈 박사:기독신문 독자들을 위해 폴 하우스 박사님의 학문적, 목회적 배경을 소개해 주십시오.
=폴 하우스 박사:침례교회에 참석했던 기독교인 부모님의 품에서 자라났습니다. 12살에 목회의 소명을 느끼게 되었고, 10대에 설교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어린 저의 설교를 경청해 주었던 친절한 성도들께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이나 교수사역을 할 때에도 교회의 목회자로서 사역을 했습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줄곧 교파가 다른 열 대 여섯 개 교회들을 방문하여 설교사역을 수행해 왔습니다. 고등교육의 사역을 시작한 때는 1986년 가을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테일러 대학교(Taylor University)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그 후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줄 곧 가르쳐 왔으며, 최근에는 앨라배마  주, 버밍험에 있는 샘포드대학교(Samford University)의 비슨 신학부에서 부학장 및 교수로 봉직하고 있습니다.
▲장:박사님의 주요 성경해석 방법론을 설명해 주십시오.
=하우스:제 자신이 고백적, 문학적, 정경적, 신학적 해석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고백적 신자로서 성경을 대하고자 합니다. 저의 이러한 태도는 수년간의 대화와 학문적 연구의 결과로서 정립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경을 해석할 때 객관적인 관찰을 한다거나 또는 무신론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히 저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의 역사적 배경, 문학적 형식 그리고 그 구조를 염두에 둡니다. 저는 본문을 이해할 때 원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던 그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오늘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요. 끝으로 저는 정경의 관점에서, 즉 전체 성경의 관점에서 성경의 본문들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저는 창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새 창조로 지향해 나가는 성경 정체의 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떤 본문이 어떻게 성경 전체의 신학적 혹은 주제적 통일성에 부합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장:박사님의 저서, <구약신학>에서 유일신론을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왜 박사님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이 유일신론 개념을 그토록 강조하시는지요?
=하우스:이스라엘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오직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독특했습니다. 실제로 구약의 기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유일하신 신으로 선포하는 데는 이와 같은 유일신론이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요. 오늘날에도 이 사상은 매우 적실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세계 종교들이 혼합종교를 신봉하며 여러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려 합니다. 또한 유일신론을 견지하는 어떤 종교들도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 개념은 수용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유일신론은 세계 선교나 복음전도에 헌신하는 기독교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장:박사님의 성경 해석은 구약과 신약을 통합적으로 보려는 성경신학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듯한데,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하우스:이 질문은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대단히 힘든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답변해 보도록 하지요. 저는 이 질문을 네 가지로 답변하겠습니다.
첫째, 신약의 기자들은 구약을 신약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약의 기자들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며 교훈과 가르침에 유익하다고 증거합니다(딤후 3:16). 그들은 구약이 우리들의 본이 되도록 기록되었다고 믿었으며(고전 10:11), 어떻게 하나님과 올바로 동행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구약 본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히 11장). 그러므로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을 사용할 때 그들은 어떠한 문제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둘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정경적인 읽기와 주제적인 읽기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하박국 2장 5절에 이미 소개된 이신칭의를 설명할 때 창세기 15장 6절과 시편 32편을 로마서 독자들에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바울은 오경, 선지서 및 성문서(눅24:44)를 통해 나타난 하나의 주제(이신칭의)를 추적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기자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성경의 통일성 안에 다양성이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역사적 관점과 배경, 그리고 역사를 통해 그의 백성들을 다루십니다. 그러나 이런 전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통일성 안에 다양성이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넷째, 우리는 구약과 신약 전체가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구약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을 신약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고, 신약이 다루지 않는 것을 구약이 다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이슈들을 모두 살펴보며, 그것들이 우리들의 삶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장:그렇다면 이와 같은 성경신학적 해석이 목회사역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하우스:앞서 말씀드렸듯이, 성경을 통일된 전체로 해석할 때, 우리는 성경의 거대 신학 구조들을 살필 수 있고, 삶의 주요 이슈들에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주제를 살필 때, 우리는 어떻게 백성들이 고통 중에서도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심판을 다룰 때, 우리는 어떻게 백성들이 회개의 필연성을 이해하게 되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백성들이 영생의 존재를 알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성경신학적 이슈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연관성을 지닙니다. 현명한 목회자는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거대 주제들을 깨달을 것이며 그것들을 설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주제들은 우리들이 삶의 현장에서 매일 겪게 되는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신학은 목회자들에게 사역의 기초 틀을 제공해 주며, 백성들이 직면할 위험을 경고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가능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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