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화력 깊은 설교가요 겸손한 지도자, 김창인목사(81 충현교회)가 성역 60
주년을 맞았다. 김목사는 청년 21세에 전도사로 목회사역을 시작해 일제시
대와 만주로의 피신, 해방후 공산당의 핍박, 월남과 6.25, 그리고 부산 피
난시절을 겪은 그야말로 민족의 역사와 파란만장함을 함께 한 한국교회의
산증인이다. 김목사는 5월15일 충현교회에서 성역 60주년 감사예배를 드린
다. 김목사의 성역 60년을 맞는 감회, 그 역경과 기쁨의 이야기를 들어본
다. <편집자>
- 목사님의 성역 60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성역 60년을 맞는 소감

△ 중학교 3학년때 폐병이 들었는데,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나 지금 제나이
가 81세 입니다. 지금까지 산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 성역 시작에서 60년이 됐으니 60주년이란 말을 할 수 있으나 현
직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은퇴했는데 이상하게도 다시 현직 당회장이
되어 성역 60년을 맞으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중3때 폐병을 앓은 것도, 80
이 넘게 사는 것도, 또 70세에 은퇴했다가 다시 당회장이 된 것도 이 모두
가 한편으론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론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해 감사할 따
름입니다.
- 목사님의 신앙은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모태신앙이었는지 아니면 어렸
을 때 어떤 동기로 신앙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 모태신앙 입니다. 부친과 모친이 모두 기독교인 이었습니다. 8세때 부
친이 별세했으나,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때문
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일년내내 새벽 4시면 찬물로 목욕을 하시고 예
배당에 가셔서 아들을 신앙으로 자랄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셨습
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육신의 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중학교에 입학 하기전에 성경을 14번 읽을 수 있었습
니다.
어머니 기도가 오늘의 나를
- 목사님이 성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중학교 3학년때 폐병을 앓아 휴학을 했고, 기도와 요양을 위해 백마산
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상하게
도 저와 함께 예배를 같이 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겼습니다. 이 산에
는 약수가 있어서 몸 약한 사람들이 많이 왔고 간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
다. 그래서 여러 명이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자꾸 나보고 예배를 인도하라
고 해서 설교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매일 예배를 인도하다보니 목사 아
닌 목사가 됐습니다. 본래 미신이 꽉 차 있던 곳이라, 조그맣게라도 예배당
을 지어 복음을 전하자고 생각해 모인 사람끼리 헌금을 했습니다.또 약수터
에 왔다간 사람들이 이상한 젊은 사람 하나가 설교한다고 소문을 내, 이곳
저곳 교회서 설교 청빙을 받아 여기에 보탰습니다.
그 후, 의주의 큰 교회였던 서교회에서 주일예배 정식설교와 부흥회를 맡
겼고, 이 소문이 또 사방에 퍼져 여러교회서 설교와 부흥회를 하게 됐습니
다. 그러다가 21살때 의주군의 청진교회에 정식으로 전도사로 부임하게 됐
습니다.
- 목사님이 60년 성역의 사명을 다하시는데,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목회
철학이 있다면.
△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형식으로 흐르고 진정으로 드려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끝장 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충현교회의 목표로 가장 먼저 신령한 예배를 정했습니
다. 그다음 천국일꾼 양성, 민족 복음화, 세계 선교, 지역사회 봉사를 목표
로 세웠습니다. 이를 교회 설립 10주년이 되는 해에 충현교회 표어로 정했
습니다.
신령한 예배가 가장 중요
- 목사님께서 가장 마음에 새기고 있는 성경말씀과 가장 애창하는 찬송가
가 있다면.
△ 성경말씀은 시편 18편 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
나이다" 입니다. 찬송가는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와 545장 '하늘 가
는 밝은 길이' 등을 즐겨 부릅니다.
- 목사님의 고향이 이북이신데, 얼마나 가고 싶겠습니까. 언젠가 목사님께
서 통일이 되면 맨먼저 달려가서 고향에 교회를 짓고 싶다는 애절한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통일을 전망하신다면.
△ 통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입니다. 쉬우려면 한없이 쉽고 어려울려면
한없이 또 어려운 일 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통일이 되느냐 하
는 것 입니다. 전쟁으로 되느냐, 평화롭게 되느냐가 문제입니다.제가 볼 때
는 무서운 말 입니다만, 한국이 예수님 오실때 통곡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가 예수님 오실때 통곡할 수 밖에 없는 정치를 하고 있
습니다. 이 백성이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자꾸
만 이런 마음이 생깁니다.
회개 않으면 전쟁 일어날 것
- 지금 이 시점에서 통일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십
니까.
△ 무엇보다 교회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동
포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분열되어 있는 한국교회도 화합을 해야 합니
다. 통일이 되기전에 무수히 많은 교단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 우리 교단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말씀해 주신다면.
△ 성경대로만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간 놀음이 섞이지 않은 순수
하고 하나님의 진리만을 내세우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 김영삼대통령이 충현교회 시무장로인 것으로 압니다. 한보사태 대선자금
등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목사님께서 권고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 날마다 대통령을 위해 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친다면 어떤 역경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 입니다.
성경대로만 살았으면
-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반복하지만 예
배가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일을 성경대로만 하고 인간적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일꾼을 키워야 합니다. 귀한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이
생명을 키우는 일 입니다.
* 김창인목사 성역 60년 약력 *

△1936년 평북 의주군 주내면 청천교회 전도사
△1937년 평북 용천군 동산면 성동교회 전도사
△1937년 평북 의주군 월화면 추봉동 해천교회 전도사
△1938년 신의주서 신사참배거부운동 전개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반대운동 핍박으로 만주로 피신
△1940년 만주서 신사참배반대운동 계속
△1945년 해방후 귀국해 이북 재건교회 운동 전개
△1945년 평북 만포읍, 황해도 황주읍에서 재건교회 설립, 시무
△1946년 공산당에 7차례에 걸쳐 체포, 수난
△1948년 12월 월남해서 서울 장충동에 재건교회 설립,시무
△1950년 6·25사변으로 부산 피난, 서대신동의 서부교회 시무
△1951년 부산 동대신동 1가에 동일교회 설립, 시무
△1953년 9월 서울 상경, 인현동에 동일교회 설립, 시무
△1957년 3월 부산 고려신학교 졸업
△1956년 8월 교회명을 동일교회서 충현교회로 개칭
△1957년 예장고신 경기노회서 목사안수
△1957년 9월 충현교회 당회장 취임
△1958년 9월 김창인목사 충현교회 위임식
△1963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가입
△1966년 6월 전국경목위원회 창설, 초대회장 피선
△1967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재단이사
△1970년 9월 제55회 총회에서 총회장 피선
△1977년 4월 북한선교회 설립, 초대이사장 취임
△1984년 4월 역삼동으로 충현교회 이전, 입당예배
△1986년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
△1987년 3월 미국 서남 침례대학교 명예신학박사학위 취득
△1987년 5월 미국 휘튼대학교 명예신학박사학위 취득
△1987년 대한체육인선교회 총재
△1987년 12월 원로목사로 추대
△1992년 10월 수도노회서 공로목사 추대
△1996년 4월 당회장 취임
△1997년 5월 성역 60주년 기념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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