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악기는 색깔이지요. 누구는 피아노로, 누구는 하프시코드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지만 저는 그림을 통해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니까요.”

이다희 작가의 ‘푸른 전주곡’ 전시회가 열리는 광주신세계갤러리에는 바흐의 작품 ‘평균율’ 중 8번 프렐류드의 선율이 잔잔히 흐른다. 실제로 피아노 연주곡이 음향장치를 통해 흘러나오고도 있지만, 갤러리를 가득 채운 미술작품들을 통해 같은 음악이 동시 연주되는 중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예술적 체험이다.

바흐의 음악은 작가에게 고향 혹은 엄마 품과 같은 존재이다. 치유사역자로 활동해 온 이박행 목사와 최금옥 사모의 딸인 이다희 작가는 바흐의 음악으로 태교를 시작했고, 전남 보성의 천봉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도 일상의 배경 삼아 듣고 자라난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흐의 ‘평균율’ 시리즈는 구약성서에 비견될 만큼 서양고전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이다. 바로 이 음악을 작가가 고안한 ‘음악번안시스템’으로 해석해, 색깔과 형태라는 재료를 가지고 새롭게 빚어낸 64개의 작품이 ‘푸른 전주곡’에서 소개되는 중이다. 작가에게는 흠모하는 예술가이자 신앙의 대선배인 바흐를 향한 존경과 찬사인지도 모른다.

바흐의 ‘평균율’을 미술작품으로 구현한 ‘푸른 전주곡’ 전시회를 연 이다희 작가와 작품.
바흐의 ‘평균율’을 미술작품으로 구현한 ‘푸른 전주곡’ 전시회를 연 이다희 작가와 작품.

“바흐처럼 저 역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를 드러내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눈으로 보여주는 음악,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는 ‘컬러 그래픽 노테이션(Color-graphic Notation)’ 다시 우리말로 ‘그림악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 독특한 작업이 이다희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방식이다.

이다희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서양화와 심리학을 공부하고, 영국 글래스고 예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이다. 특히 바흐나 모차르트 등의 클래식 음악을 회화와 비디오아트를 비롯한 다양한 미술기법으로 표현하는 작업으로 세계 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0년에는 광주신세계미술제 신진작가상, 2021년에는 금호영아티스트로 연속 선정되며 재능을 인정받은 바 있는 이 작가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1월 4일까지 계속된 ‘푸른 전주곡’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가 지닌 진면목을 당당히 세상에 보여주었다.

광주에서의 전시회가 끝난 후, 이다희 작가는 전주로 자리를 옮겨 완판본문화관과 함께 서양음악과 우리 전통문화가 만나는 예술적 콜라보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영국 독일 스코틀랜드 등 유럽 무대에서 활동도 이어가며, 바흐의 ‘평균율’ 48곡 전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결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 다른 꿈도 있다.

“제가 청력이 좋지 않은 편이에요. 그래서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애로에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바흐의 음악에서 느끼는 신성함과 치유의 힘을 그분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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