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와 교류 단절은 분리주의 아닌 참된 개혁주의다

본 논문은 WEA(World Evangelical Alliance)의 최근 동향과 그 신학적 바탕을 살핀 후 합동교단이 WEA와 교류를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하는 글이다. WEA의 신학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WEA는 최근 다른 기독교단체 및 종교그룹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할 뿐 아니라,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신학적 토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WEA의 이러한 행보를 통해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WEA의 기원과 신앙고백

WEA는 1846년 유럽과 미국의 복음주의자들 800여 명이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결성한 복음주의연맹(EA)에 그 기원을 둔다. 당시 교회를 위협했던 성경의 고등비평과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계몽주의적인 합리주의 사상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이 연맹은 1951년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연맹체인 NAE와 연합하면서 WEF(World Evangelical Fellowship)로 발전했고 이것이 2001년에 WEA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건전하고 복음주의적인 신앙고백을 갖고 있다. 이들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구원, 성령이 이루시는 성화, 교회의 하나됨과 인간의 부활 등을 믿는다. 이 같은 그들의 고백에는 합동교단의 신앙고백에 위배되는 바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WEA가 실제적으로 행하는 모습들 속에 합동교단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래에서 보게 될 것처럼 이들은 ‘복음’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것을 토대로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과거 WCC가 ‘선교’와 ‘하나됨’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다원주의의 길로 걸어갔던 것처럼 WEA도 처음 결성될 때 가졌던 복음주의 정신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2. 다른 종교에 대한 WEA의 태도

WEA의 전신인 WEF의 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존 스토트와 잭 데인은 빌립보서 1장의 표현을 통해 WEF의 존재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바로 ‘복음의 확장’과 ‘복음의 변호와 확증’ 그리고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그것이다. 신자가 복음의 확장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이를 위해 교회의 연합을 추구하는 일 또한 부정적으로 볼 이유 또한 전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목적을 단순화시키는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일종의 포용주의로 가는 씨앗을 태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WEA의 지도자들은 빈번하게 복음의 전파 및 복음 안에서의 연합을 위해 교리와 신학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예를 들어 1996년부터 2008년까지 WEA의 신학위원장을 맡았던 롤프 힐레는 ‘복음주의연맹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자신의 글에서 WEA의 방향성을 묘사하면서 “신앙의 기초는 여기서 관건이 되는 공동의 기초와 관련된다. 이것은 우리가 안식일 교회와 오순절 교회와 가톨릭 교인들을 만나는데 도움이 된다. 설령 우리가 그들의 교회론이나 성령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기초 위에서 모든 거듭난 기독교인들과 공유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은 WEA가 전혀 다른 신학적 정체성을 가진 여타의 기독교단체들이나 심지어 타종교와도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WEA의 신학위원회 선임고문인 토마스 존슨은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선한 사람들”이고 “다른 종교는 악의 구현이 아니다”라고 발언하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WCC 지도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타종교인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 없이 단순히 사랑과 선교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인본적 박애주의로 가는 것과 같다.

3. WCC와의 관계

WEA는 사회적 복음을 추구하는 양상에서 WCC와 많이 닮아있다. 최근까지 WEA 국제총무를 맡았던 벤서는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모든 사람을 위해 사회 정의를 증진해야 하고 가난을 축소하고 인간의 자원을 서로 간에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WEA의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사회를 위한 봉사는 기독교인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 하지만 선교를 핵심가치로 설정한 이들이 사회문제에 지나치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흔히 기독교의 구원을 가난이나 질병 혹은 압제로부터의 구원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WCC가 이러한 구원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기독교 복음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사회복음으로 변질시켰다. 아쉽게도 WEA가 계속 보여주는 WCC 및 그 협력교회들과의 긴밀한 교류는 WEA가 WCC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확신하게 한다.

WEA가 WCC나 로마가톨릭과 빈번한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나아가 WCC나 로마가톨릭이 적극적으로 대화를 추구하는 타종교 그룹(이슬람교, 유대교 등)과 한자리에서 교류하는 일도 흔하다. 일례로 가장 최근인 2020년 4월 WEA 뉴스레터는 그해 3월 23일 바티칸에서 개최된 ‘Multi-Faith Neighbors Network’에 WEA가 참여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WCC 및 다종교그룹 관련 소식을 포함하고 있다. 유대교나 무슬림 등이 함께하는 이 ‘Multi-Faith Neighbors Network’는 종교가 지역사회에 불화나 적개심을 야기하는 경우 다종교적 개입을 통해 이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즉 종교 사이의 연합과 협업을 통해 사회적 악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뉴스레터는 WEA가 종교의 자유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무슬림 그룹과 협력을 시작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WEA의 신학위원장이며 사무총장인 쉴마허는 “(WEA는) WCC와 바티칸과 많은 부분에 동의하고는 있다”라고 했고 “(WCC와) 신학적, 교리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같은 곳을 보고 있다”라고도 말했다(기독일보 2013년 11월 7일자). 또 그는 (WCC처럼) WEA가 “모든 종교를 위한 종교적 자유를 가졌거나 전혀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크리스챤연합신문, 2012년 10월 22일자). 그의 이러한 주장과 표현은 WEA도 결국엔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유사한 종교포용주의를 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쉴마허의 전임 WEA 신학위원장이었던 힐레는 국민일보와 대담을 갖고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WEA로 대표되는 복음주의 진영과 WCC의 에큐메니칼 진영 간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WEA 입장에서 WCC 헌장에 나오는 신앙고백을 수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WCC가 스스로 천명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조금 멀어졌던 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열린 마음으로 환영하고 기도로 동역하면 된다.” 이처럼 WEA는 WCC와 동행하고 있다.

4. 공동문서 <다종교 세계에서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증거>

2011년에 WEA는 WCC 및 교황청 종교간 대화평의회(PCID)와 더불어 <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2011)>라는 이름의 공동문서를 작성했다. 공동문서는 서문, 선교(전도)의 기초, 선교(전도)의 원리 그리고 제안으로 구성돼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선교의 기초와 원리 부분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언급이나 회개의 필요성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교의 ‘원리들’을 말하는 부분에서도 양상은 비슷하다. 사랑과 겸양의 자세로 전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섬김과 봉사를 전도의 핵심적 요소로 제시한다(4절). 그러나 죄, 불신앙, 배교, 진리,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언급이나 경고는 없다. 결국 WEA는 선교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가난과 궁핍 그리고 인권과 종교의 자유와 같은 사회문제들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다.

‘원리들’의 7절은 흥미롭게도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천명한다. 그런데 종교의 “이 자유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근거를 가지는 인간의 가치에 직접 기인한다”라고 단언한다. 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언급한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들이 말하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는 타종교를 믿는 자들이 누려야 하는 자유를 가리킨다. 즉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개종을 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문서가 표방하는 선교란 명백히 종교다원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맺는 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WEA는 복음 전도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타종교 포용주의를 취하고 있다. 사실상 복음의 확장이라는 목표가 그들의 포용주의적 활동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둘째, WEA는 WCC 및 로마가톨릭과 여러 모양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류는 지엽적인 현상이 아니라 WCC와 궁극적인 방향을 함께 한다는 분명한 인식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셋째, 그들이 WCC 및 로마가톨릭과 함께 작성한 공동문서는 진정한 복음전파의 의미를 왜곡하는 문서이며, WEA가 WCC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WEA의 신학이 합동교단의 신학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합동교단은 WEA에 가입하지 않아야 하며, 교단이나 목회자 개인의 자격으로 그들과 교류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교류 단절은 무엇보다 WEA가 WCC와의 일치된 방향성 속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WCC와 협력하면서도, 그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하는 WEA는 실질적인 면에서 WCC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스스로 WCC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고 고백하기도 했으며 실질적으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WEA와도 교류하지 않아야 한다. 더욱이 현재의 추이를 살펴볼 때, WEA가 앞으로는 더더욱 WCC와 구별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 확실하다. 어쩌면 명백히 그 본색을 드러내는 WCC보다도 정통적 신앙고백과 복음이라는 명목을 앞세우면서 은근하게 포용주의를 실천하는 WEA의 모습이 건강한 신앙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더 위험할 수 있다.

선한 사업을 위해 WEA의 조직이나 영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교류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면서도 무익한 발상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고 전파하는 것을 어떤 선한 사업보다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종교와 연합을 추구하고 있는 WEA와 교류를 단절하는 것은 분리주의가 아니라, 참된 개혁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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