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형태 교류 유지하되 신학정체성 우려 전달해야

세계복음주의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liance)은 1846년에 영국에서 결성된 복음주의연맹(EA, Evangelical Alliance)이 1912년에 세계복음주의 연맹으로 확대되었다. 1942년에 미국에서 결성된 미국복음주의협회(NAE)와 교류하다가 WCC와 대결하기 위해서 1951년에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World Evangelical Fellowship)로 결성되었다가 2001년에 다시 세계복음주의연맹(WEA)으로 개명되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복음주의협회가 WEA에 가입되어 있다.

먼저, WEA의 전신인 EA의 기본적인 신학적 입장은 그들의 교리진술서(Doctrinal Statements)에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9가지인데, 성경의 신적 영감, 권위, 그리고 충족성, 성경해석에서의 개인적 판단의 권리와 의무, 신격의 단일성, 또 그 안에서의 위격들의 삼위일체,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은 인간 본성의 전적부패,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 그리고 중보와 통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인의 칭의, 죄인의 회심과 성화에서의 성령의 사역, 영혼의 불사, 육체적 부활, 의인의 영원한 축복과 악인의 영원한 심판이 있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대한 심판, 기독교 목회의 신적 제정, 또 세례와 주의 만찬 규례들의 의무와 영속성 등이다.

언뜻 보면, 위 교리들은 개혁파 교리와 그다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개혁파의 신학적 엄격함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성경 무오설”이란 표현보다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인정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그렇다.

그러나 WEA의 역사적 행보를 살펴보면 의심스러운 면이 보인다. 첫째로, WEA의 최근 동향 중 2011년 7월 28일에 WEA가 WCC의 초청을 받아들여 WEA-WCC-가톨릭 공동합의서인 ‘다종교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의 증거:실행을 위한 권고 사항들’(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 Recommendations for Conduct)이라는 공동합의서를 작성하는 데 동참한 사실이 있다. 이 공동합의서는 서문에는 이 보고서가 선교에 관한 신학적 진술이 되기를 의도하지 않고, 다종교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관련된 실제적인 이슈들을 다룬다고 하고 있다. 권고 사항들에서 중요한 내용은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가 갈등들을 해결하고 정의를 회복하며 아픈 기억들을 치유하고 화해와 평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하며, 다른 지역의 종교적 정체성과 믿음을 강화하도록 격려하라고 한 것이다. 그밖에 공익과 정의를 위해 다른 종교들과 협력할 것과 다른 정부 기관들이 종교의 자유를 존종할 것을 요청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갈등 치유와 평화를 위해 좋고 공익을 위한 연대도 필요한 것이지만, 다른 종교의 정체성과 믿음을 강화하라고 격려하는 것은 자칫 개종전도를 포기하거나 금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양보하는 것이며,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포기한 것일 수 있다.

두 번째로, WEA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로마가톨릭과 함께 협의해 온 사실이 있다. 두 기구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추어 6년간의 연구 끝에 광범위한 문건을 작성하여 2016년에 발표하였다. 이 문서의 제목은 ‘가톨릭교회와 WEA 사이 국제적 협의’(International Consultation between the Catholic Church and the World Evangelical Alliance, 2009~2016)이다. 그 중요한 내용들은 가톨릭교회와 복음주의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과 성경과 아울러서 사도적 전통을 중시해 온 가톨릭 측의 입장을 개신교 측에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차이점보다 공통점들이 더 많이 있으니, 앞으로 상호 간에 좀 더 많은 협력과 대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방향성’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성경과 전통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가톨릭의 입장을 인정하라는 것으로서 오직 성경의 종교개혁원리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일은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하다 보니 생긴 복음주의 정체성의 약화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WEA가 로마가톨릭과 WCC와 공식적인 대화를 시작하고자 하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물론 대화 자체나 관계 복원 시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시도들이 공식적인 행사가 될 때 필연적으로 선언서나 공동합의서의 작성, 또는 연합의 모임 등 기구나 조직의 문제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것이 신학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80년 3월에 WEA의 이전 기구인 WEF 총무 얼드론 스코트(W. Scott)가 실행위원회의 허락을 받아 두 명의 가톨릭 대표들을 초청해서 개회 인사를 하게 한 사실이 있었다. 201110월에는 WEA 에큐메니컬 위원장인 롤프 힐레 위원장(튀빙겐 신학대 학장 역임)“WCC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201210월에는 “WCC-WEA 대화라는 주제로 한국기독교학술원 주최 아래 제42회 학술공개세미나가 열렸는데, 그때 WEA의 신학위원장인 슈마허(Dr. Thomas Schirrmacher, 작년에(2020) 차기 총무 겸, CEO로 임명, 20213월부터 재임 중) 박사는 “WEAWEA회원교회들은 WCC의 헌장을 동의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WEA의 입장이 WCC의 세계종교 통합과 종교다원주의의 입장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들에 합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와 같이 WCC 에큐메니칼 운동을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교단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인사 자체가 WEA가 WCC를 신학적으로 지지하거나 WCC와 협력한다는 인상을 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말타(The Republic of Malta)의 세 나라 WEA 지부들이 연합하여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WEA 참여를 중지한 사실이 있다. 이 세 나라들은 모두 로마가톨릭 국가들인데, 그 나라들에 소속한 개신교의 WEA 지도자들이 최근 WEA 본부의 신학과 행보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것은 2017년 12월 1일 날짜로 된 8쪽 분량의 공개서한인데, 그 내용은 WEA의 본부 지도부가 원래의 신학 입장에서 벗어나 에큐메니칼 쪽으로 흐르고 있고, 로마가톨릭과 WCC가 함께 연합하여 작성한 문건에 서명하려고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이것은 심각한 고발인데 … WEA의 바티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러한 차이들을 무시하지 않으며, 교회적 그리고 성례적 연합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반면에 선교적, 실천적 관점에서 볼 때, WEA의 지향하는 바가 꼭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만 볼 수는 없는 측면도 있다. 오히려 그 관점에서는 이 운동이 복음적이며, 그러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도전도 한편으로 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성경 정신에 반하는 반 전통적, 반신학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예의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위에서 살펴본 WEA의 역사적 행보는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오고 있고, WCC 가입과 탈퇴 문제 때문에 통합측과 갈라선 우리 합동측의 입장과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WEA와 교류를 계속할 것인지 금지할 것인지에 대해 조사 연구를 해달라는 교회들의 요청에 합당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목적은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과 바른 복음을 지키고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며 약자들을 돌보고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는 데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전에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서는 교단을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여 협조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도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맞다고 판단되는 일을 추진할 때는 예장합동 뿐만 아니라, 이에 동의하는 모든 기독교 단체와 가톨릭, 다른 종교 단체, 비신자들과의 연합도 모색해서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사안들, 예를 들면 세상의 공익을 위한 일이나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WEA와 연합활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러나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개혁파 신학과 다른 신학적 선언을 최근 WEA가 했듯이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순수한 복음의 정체성을 흐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복음의 선포와 성례의 정당한 시행과 같은 참된 교회의 표지가 있는 한 다른 기독교 연합단체와 교류를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재 WEA에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가입되어 있지만, 예장합동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복음주의 신학회는 WEA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단지 학회에 초청되는 외국인 강사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이 WEA에 가입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학적 교류까지 금지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만약 이런 것까지 금지한다면 우리 예장합동은 신학적으로 세계에서 고립될 것이고 분리주의라고 비난받을 우려도 있다. 또한, 총신 신대원을 졸업하고 외국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갈 경우에도, 그 대학이 이미 WEA에 가입된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그 대학에 유학 가는 것을 금지한다면, 총신 출신이 유학 갈 수 있는 해외 신학대학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WEA에 가입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이미 취득하고 현재 우리 교단의 신학교에서 교수활동을 하고 있는 학자들을 배격하거나 신학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하는 것도 지나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WEA와의 전면적 교류 금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 예장합동은 우선, 우리 개혁파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주권 강조, 성경 무오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WEA와의 신학적 교류는 우리 예장합동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공익을 위해서 사안별로 연합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WEA에게는 WCC나 가톨릭과 신학적 공동 선언문을 작성하지 말라고 권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동 선언문은 복음주의 신학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자유주의로 돌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예장합동이 WEA에 가입하여 회비를 낸 적도 없고, 그 조직에 합류한 적도 없다. 현재 공식적으로 WEA에 합류한 단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뿐이다. 따라서 우리 예장합동이 가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탈퇴를 선언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현재의 느슨한 교류 형태를 유지하면서, WEA 관계자들 중에 핵심 임원들 몇몇이 과거에 행했고, 앞으로도 행할 우려가 있는 가톨릭과 WCC와의 신학적 연대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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