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매슬로우(A. H. Maslow)의 ‘욕구 5단계설’이 있다. 그것에 의하면, 하위에 생리적 욕구가 자리하고, 그 위에 안전, 또 그 위에는 사회적 욕구가 위치한다. 맨 꼭대기가 자아성취의 욕구다.

대부분의 사람은 외로움을 싫어한다. 사회적 욕구 때문이다. 하긴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좋지 않게 보셨으니. 그래서 가정이든 학교든 그리고 직장 등에 소속되는 것이고, 심지어 돈을 써가면서 사회단체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바람직한 사회가 교회일 것이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소그룹 활동도 하고, 힘써서 이런저런 봉사에도 함께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상위욕구인 존경도 받고, 또 자아성취도 경험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하위 욕구인 안전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하다. 초기에는 그래도 모여야 예배라면서 방역당국의 따가운 지적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점차 달라지고 있다. 20% 또는 30%가 모일 수 있는 여건에서도 그만큼 자리를 채우는 것이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지역별 특성이 있겠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더욱 모임이 되지 않는다. 20% 제한 속에 더 많이 올 걱정이 아닌, 그 수치조차 채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마음껏 모일 수 있게 될 때 과연 과거처럼 모일 수 있을까 미리 걱정이 앞서는 것이 무슨 일일까?

‘사회적 욕구’보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우선한다는 매슬로우가 옳은 모양이다. 그 욕구 단계설이 요즘처럼 신뢰가 가기는 처음이다. 위험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격리 당하면서라도 고상한 가치나 자아실현을 위해 낮은 단계의 욕구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러기에 욕구가 꼭 단계적이지 않다고 믿어온 나는 요즘 흔들린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사회적 욕구를 흔들어 놓는 것 같아 나의 신념도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도 제대로 봐야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안전이 진정한 안전이 아님을.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안전지대는 하나님일진대, 왜 예배하는 곳보다 더 안전한 곳이 없다는 믿음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일까? 잊지 말자. 인류의 건강한 가치와 역사를 지켜낸 힘은 낮은 수준의 욕구를 기꺼이 희생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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