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학의 정론 방호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 거쳐야 한다
[오피니언] 신학의 정론 방호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 거쳐야 한다
서문 강 목사(중심교회 원로)
  • 기독신문
  • 승인 2021.03.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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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다.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로마가톨릭이 주장하는 대로 베드로가 아니라 ‘사도적인 신앙고백’이다. 그 고백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이다.(마 16:16,17;요 1:12,13) 여기서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하심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와 그에 속한 세력이 판을 잡고 있는 세상의 조건’을 상정하셨다. 정치적 세력을 동원한 박해, 사회 문화적 악한 풍조, 이단들의 발호가 마귀의 작품들이다.

교회사는 그에 대응하기 위한 교회의 싸움을 증거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육체적인 아니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들을 파하여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영적인 싸움’이라고 선언하였다.(고후 10:4~6) 그 과정 중에 ‘피의 순교’가 수반하였다. 그러니 그 싸움의 복판에 항상 ‘신학’ 또는 ‘교리’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바울사도는 자기가 증거하는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여 교훈(교리)의 본’이라 표현하여 철학이나 이단들의 교훈과 차별화하였다.(롬 6:17,18) 교회사는 그 ‘사도적 교훈(교리)의 본(체계)’를 견지하며 방호하는 세력과 그것을 대항하여 ‘다른 복음, 다른 교리(교훈)’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음부의 세력 간의 싸움을 증거한다. 곧 ‘신학적 쟁투’였다.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사의 그 현장들에서 ‘사도의 바른 복음(교훈)’을 피 흘리기까지 방호(防護)하고 선양(宣揚)하는 이들의 투쟁 속에서 생성된 필연의 소산이다. 그 일에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주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수반되었음은 자명하다.(요일 2:20,21)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그런 역사성과 신적 감화의 소산인 개혁주의 신학과 그 교리적 표준을 견지하여 확인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단대책위원회’나 ‘신학부’는 그 ‘신학의 정론’을 방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총회로부터 수임하였다. 그 일에 수고하는 위원들의 노고를 귀하게 여기며 제안을 하고 싶다. 모든 안건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이제까지 개혁주의 정론으로 여겨졌던 요점과 맞닿은 안건을 다룸에 있어서 공론(公論)의 마당을 만드는 것이 지혜다. 우리 교단이 ‘성경을 총괄한 것으로 알고 신앙의 표준문서’로 받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8년 공포)도 어느 무리의 편향된 주장의 표현이 아니었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잉글랜드와 스콧트랜드 교회들이 선정한 신학자와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들로 구성된 위원 121명의 ‘치열한 공론’의 현장이었다. 그 문서 작성을 위한 5년 6개월 동안, 위원들은 기도와 금식과 경건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면서 무려 총 1163 번의 ‘공론’을 거쳤다. 그리고 그 문서를 칼빈주의 교회들이 공인한 후 350여 년 간 ‘성경을 총괄한 개혁주의 신학의 정론’으로 여겨져 왔다.

물론 신앙을 위한 그 어떤 표준문서도 성경과 같은 ‘절대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여기는 부분이 있다고 제안하는 신학자가 있다면 그런 제안에 귀를 열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의 전말을 유념하여 해당 문제에 대한 전문 신학자들도 ‘거리낌 없이 참여할 공론의 마당’을 열어야 하리라 본다. 그러면, 공론을 통하여 논란의 관점들이 공개되고 균형 잡힌 접근의 안목이 열려 이대위의 짐도 가벼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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