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원 목사(효성교회)

긍정과 허용만이 있는 사회는 급속히 병들어간다. 부정과 배제도 있어야 병리학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배제와 포용이 없다면 그 사회는 과잉소통과 과잉소비가 만연되어 타자는 소외되고, 추방당하며, 타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지금 우리 총회의 문제는 끼리끼리 하는 소통과 유유상종하는 소비에 있다. 결국, 이것은 우리 총회와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흔들어 잃어버리게 하며 바른 정체성을 가진 자들을 타자로 만들어 추방해 버리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총회는 끼리끼리와 유유상종으로 정치적, 이익적 동일자(The same)만 남고, 개혁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가진 자는 타자(The other)가 되어 사라지고 있다. ‘다수’와 ‘소수’의 힘겨루기에서 이제는 ‘소수’도 되지 못하는 ‘하나’로서의 타자가 되어 버린 개혁신학과 신앙은 총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공교회의 유익과, 전체의 유익이 아닌 몇몇 사람과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타협과 화해(야합)를 통해 여전히 총회를 산으로 가게 하고, 교회를 바다에 침몰시키고 있다.

반환점을 돌고 있는 105회기 총회도 여전히 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총회 임원선거에 관한 규정의 변경으로 105회 총회가 파회 되자마자 106회 총회 임원에 나서려는 자들의 ‘자기 알리기’ 운동이 금권선거를 다시 조장하고, 유행시키고 있다. 결국은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고, 동일자의 긍정성만 요구하고, 그것을 사려고 하는 시스템은 곧 자기 파괴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우리는 살고 있다. 사실상 혼수상태, 식물총회가 되어가고 선거는 있고 인물이 없는 여전한 총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목사로서, 그리고 개혁신학과 신앙을 가진 성도로서 금번 우리 총회는 ‘특별한 총회’가 되길 기도했고, 기대했다. 왜냐하면, 맨발의 소명자로 불리는 목회자가 총회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야성, 지성, 영성을 갖춘 목회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총회의 일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105회 총회도 별로 변하지 아니한 것 같다. ‘여전한 총회’이지 개혁되고, 개혁하는 ‘특별한 총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데 총회 인사는 개혁보다는 ‘세움’을 위해서인지 문제가 있는 인사들을 다시 쓰고 있다. 결국, 옥에 티가 되어 버렸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원활한 운영을 할 수 없었지만.

105회기 총회의 출발은 세움을 위한 부드러움으로 출발하였다면 이제 반환점을 돌고 있는 총회로서 세움을 위해 강함, 반듯함으로 총회 스스로가 개혁 신학과 신앙을 지키며, 교단의 헌법과 결의를 반드시 지켜갔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 어느 총회 때보다도 현 총회장의 지도력, 리더십이 탁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회장과 총회 임원들이 디지털 네트워크의 소통만 하려고 하며 같은 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면 우리 총회의 지평은 갈수록 좁아지고 결국은 자기선전에만 열을 올리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해 본다. 우리 총회의 성숙을, 반환점을 돌고 있는 총회장과 임원들에게서. 신앙은 신학적 지식과 함께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남은 6개월의 시간 속에서 행정의 효율성과 정책의 생산성이 우리 교단의 신학, 신앙의 성숙함으로 드러나길 기대하며 총회가 총회다워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반환점을 돌고 있는 105회 총회와 106회 총회를 이끌어 갈 사람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나, 총회를 자기 몸같이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총회를 맡길 수 있고, 총회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만이 총회를 섬길 수 있다. 둘,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비친 소나무는 물에 젖지 않고, 명경지수에 돌 하나 떨어지면 소나무는 바람이 불지 아니해도 흔들린다.’ 그렇듯이 우리 총회의 개혁신학과 신앙은 물속에서 흔들리는 소나무처럼, 실상은 흔들리지 않기에 현실 속에서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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