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식물연구가 김종화 장로가 전국서 채집한 야생화 군락 이룬 작은 정원

초애원을 일구어낸 자생식물연구가 김종화 장로. 전국을 다니며 채집한 야생화들을 모아 수백, 수천 종의 식물들이 정답게 어울려 지내는 공간을 만들었다.
초애원을 일구어낸 자생식물연구가 김종화 장로. 전국을 다니며 채집한 야생화들을 모아 수백, 수천 종의 식물들이 정답게 어울려 지내는 공간을 만들었다.

봄소식은 남쪽 항구 부산, 그 도시의 한 옥상정원에서 가장 먼저 전해진다. 온갖 들풀이 무성히 자라나는 뜨락이라는 뜻을 가진 ‘초애원’은 강남 제비처럼 세상에 봄기운을 알리는 전령이다.

아직 2월, 한바탕 폭설도 쏟아지고 영하의 기운이 매일처럼 맹위를 떨치는 중임에도 초애원에서는 이미 온갖 꽃들이 향연이 펼쳐진다. 이름부터가 ‘봄맞이 꽃’을 뜻하는 영춘화, 해가 나면 피어났다 어둠이 깔릴 무렵 슬그머니 몸을 숨기는 복수초가 영롱한 노란빛을 자랑한다.

겨우내 메말라 생명을 다한 듯 보이던 가지들과,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던 땅 속 뿌리들에서 귀하고 예쁜 새 생명이 돋아나는 풍경은 마치 굳게 닫힌 무덤 문을 열어젖히고 영광스럽게 빛으로 걸어 나오신 우리 주님의 이미지와도 꼭 닮아있다. 초애원의 봄은 이처럼 부활의 이야기들로 충만하다.

천연기념물 미선나무에서는 하얀 이파리들이 떼 지어 자태를 뽐내고, 마치 바다 속 아기 산호초들이 뭍으로 모습을 드러낸 양 이제 막 앙증맞게 솟아나는 앵초는 구경온 이들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자아낸다. 이밖에도 무늬잎산수국, 삼색제비꽃, 섬초롱꽃, 넓은 잎삼나무 등등 듣기에도 생소한 이름의 갖가지 식물들에 생명의 기운이 물씬하다.

3월이 되면 보랏빛 빈카를 비롯해 수호초, 왕나팔수선, 매발톱꽃, 분홍진달래, 동의나물, 옥잠화까지 합류해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작약과 라일락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다윗의 별’을 닮았다는 애기수선화는 진작 만개한 채 제 세상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사진 제공=초애원)
(사진 제공=초애원)

초애원은 자생식물연구가인 김종화 장로(부산 남천교회)가 스스로 짓고 가꾼 작은 정원이다. 전국을 다니며 채집한 야생화들을 자신의 집 마당에서 곱게 키우다, 7년 전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5층짜리 건물을 건축해 이사한 후 옥상에 옮겨 심으며 조성한 것이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석구석 살뜰하게 꾸미고 다듬어 수백, 수천 종의 식물들이 정답게 어울려 지내는 놀라운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어린 자식을 돌보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보살피다보니, 각각의 생태는 물론이요 꽃말 학명 등에다 따라 붙은 온갖 일화들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가 됐다. 예를 들어 ‘봄까치풀’이라는 두해살이 야생화 하나를 갖고도 김 장로는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 선조들이 ‘개불알풀’이라고 조금 민망하게 부르던 풀이름을 순화하여 다시 지은 이름이 ‘봄까치풀’입니다. 학명으로는 Veronica persica라고 하는데 ‘베로니카의 복숭아’라는 뜻을 가졌어요. 서양여자 이름인 ‘베로니카’가 이 꽃에 유래한 사연이 참 재밌는데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귀를 쫑긋 세운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실 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드렸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중에 보니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졌다는 것이죠. 서양 사람들은 바로 이 꽃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며 전설의 주인공인 ‘베로니카’의 이름을 붙여줬답니다. 고달픈 나날을 보내던 사람들이 이 작은 풀에서나마 구세주의 모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김 장로는 지인들이며 초애원을 찾는 방문자들과 인터넷카페(cafe.daum.net/sfc1955)를 통해 매일 나누고, 자신이 직접 발간하는 <부산문학>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에 연재하기도 한다.

만약 부산여행을 떠날 기회가 있다면 사시사철 생명의 신비와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이 명소를 들려보시라. 작지만 진한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초애원에서는 문학과 기독교 신앙의 세계를 보여주는 수많은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사진은 장로교회 면려운동과 관련된 전시물들.
초애원에서는 문학과 기독교 신앙의 세계를 보여주는 수많은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사진은 장로교회 면려운동과 관련된 전시물들.

면려운동 등 교회역사도 만난다
초애원, 기독교 문학과 신앙세계 자료 전시

‘초애원’말고도 또 다른 간판들이 나란히 한 공간을 장식한다. ‘남촌문학관’ ‘SFC & CE역사관’ ‘부산문학’ 등이 같은 건물을 함께 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름들이 뒤섞여 지내게 된 데는 김종화 장로의 독특한 이력에 깊은 연관이 있다.

자생식물연구가로서만 아니라 김 장로는 시인, 문학관장, 면려운동가, 교회역사가, 합창단장 등 보통 사람이 한두 개 갖기도 어려운 여러 직함들을 소유하고 있다. 한 가지 소재에 관심을 가지면 뿌리까지 파헤칠 정도로 집중해 연구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힘닿는대로 수집해 기어이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내는 열성적 성품이 빚어낸 결과이다.

그래서 초애원에는 야생화 말고도 국내외의 온갖 시집들이며, 자신이 단장으로 섬기는 부산장로성가단의 합창곡집을 비롯한 수많은 음반들, 그리고 한국장로교회 면려운동과 관련된 온갖 역사자료들이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다.

시와 음악과 꽃들, 거기에다 주인이 직접 끓여내 주는 향긋한 차 한 잔까지. 초애원에서는 오감이 두루 즐겁다.

▒ 초애원을 찾아가려면

초애원의 주소는 부산광역시 남구 못골번영로 49번길 6-7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부산으로 진입하여 번영로로 갈아탄 후, 대연터널을 지나 빠져나오는 노선이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한 초애원은 공간의 한계로 단체 방문객을 받기가 쉽지 않다. 소규모 인원으로 방문해야 관람이나 주차에 무리가 없다. 사전예약은 필수. 전화(051-628-3797)나 이메일(sfc1952@chol.com)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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