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 박사, 장로교회 초점 맞춰 민족운동 조명 … “실천적 신앙과 헌신으로 겨레 선도”

<한국장로교회와 민족운동> (이영식/한국기독교사연구소)

한국교회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한탄이 도처에서 들린다. 겨레와 시대를 품지 못하는 종교라는 손가락질, 복음의 본질이 원래 그렇다는 비아냥거림 앞에 항변조차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역사는 증언한다. 이 땅에서 기독교는 그렇게 푸대접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총신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강의하는 이영식 박사가 한국기독교사연구소를 통해 출간한 <한국장로교회와 민족운동>이라는 제목의 저서는 이 같은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는 증거집이다.

한국개신교 그 중에서도 장로교회에 포커스를 맞춰,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동안 펼쳐진 전도활동 교육·의료선교 성경번역 등 기본적인 복음사역 뿐 아니라 겨레의 현실 속으로 깊이 들어와 동고동락한 활약상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을미사변의 충격에 빠진 고종황제를 선교사들이 목숨 걸고 지킨 춘생문 사건, 기독인 애국지사들을 향해 일제가 교활하고도 잔인한 마수를 뻗은 105인 사건, 한민족 전체가 식민통치를 온 몸으로 거부하며 분연히 일어선 3·1만세운동, 압제에 허덕이는 겨레를 다시 일으켜 세운 물산장려운동과 계몽운동, 그리고 신사참배운동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주요 사건들 속에 빛나는 장로교인들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이 페이지마다 새겨진다.

특히 이영식 박사는 105인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제4장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 구국회복운동에 앞장선 장로교인들의 주도적 역할을 조명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장로교회 성도들이 대대적인 탄압을 받은 105인 사건의 연루자들이 체포되어 이송되는 모습.
일제강점기 한국의 장로교회 성도들이 대대적인 탄압을 받은 105인 사건의 연루자들이 체포되어 이송되는 모습.

이 사건은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시도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일제가 이승훈 강규찬 양전백 김창건 변인서 신효범 등 서북지역 장로교인들을 비롯한 기독교인 민족지도자 105명을 체포해 구금하고 고문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허위와 날조에 의해 기소된 인물들 중에는 장로교인이 무려 89명을 차지한다. 사실상 장로교회에 대한 집중 탄압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 “민족의 암울한 시대에 소망의 빛으로 부상했던 한국교회에 가시적이로 심각한 박해가” 가해진 것이라고 설명하며 “한국장로교회는 이 영적이고 물리적인 도전 앞에서 그리고 이후 일제 강점기에 대민족적인 역할을 정립해야만 하는 과제를 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계속해서 3·1운동과 신사참배반대 등 장로교회가 항일독립운동을 선도한 민족사적 여정에 105인 사건이 중대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장로교회가 지닌 어떠한 면모가 한민족 역사 중심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던지도록 한 것일까?

“청교도의 후예로서 물려받은 실천적 신앙, 비진리를 차단하는 말씀의 위에 대한 철저한 인식, 성경중심의 사역과 복음에 대한 열정적 헌신 등이 한국장로교회를 정초하는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한국장로교회의 대 민족적 책임 및 민족운동을 위한 토대 및 동인이 되었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장로교회도 성경과 종교개혁의 정신이라는 본질을 온전히 회복하고, 민족을 지도하며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배출하여 세상의 소망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최종 결론이다.

이영식 교수는 총신대 일반대학원에서 ‘한국장로교회와 복음의 대민족적 책임’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역사신학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강의활동과 함께 교회사 관련 연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소장 박용규 교수는 추천사에서 ‘한국장로교회와 민족운동’은 한국교회사에서 연구가 크게 진행되지 않은 개척분야라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관련분야의 연구를 진작하고 한국교회의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하는데 이번 저작이 공헌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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