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목사가 된 지 20년 이 훌쩍 넘었다. 현재는 담임 목회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 부교역자 생활도 했었고, 신학교 교수나 설교 전담 목사도 해봤고, 선교 단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처럼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도 경험했고 펠로우(fellow)로서 대등한 협력 관계로도 일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형태야 어떻든 동역자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서로 상처받고 사역마저 위기에 처하게 됨을 깨달았다. 교회 안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동역자들 사이의 관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최근에 불편한 동역 관계로 고민이 깊었을 때, 어디선가 “알파-센타우리(α-Centauri)가 어디 있는 별이지?” 하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아내가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라는 SF영화를 보면서 한 혼잣말이었다. ‘알파-센타우리’ 라는 이름이 내 입에 미소를 머금게 했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이 별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고 또 그 이름에서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파-센타우리’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4.37광년) 별이다.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인데다 크기도 태양과 비슷한 이유로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상상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알파-센타우리’는 SF영화에서 외계인이 사는 행성 또는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가진 별로 자주 등장한다. ‘알파-센타우리’는 크지 않은 별이지만 지구와 가까운 거리 때문에 지구에서 육안으로 볼 때 3번째로 밝은 별로 손꼽힌다. 그런데 이 별이 밝게 보이는 이유는 단지 가까운 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육안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되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이 별은 쌍성(Binary)이다. 별 두 개가 함께 빛남으로 더 밝은 별로 보인 것이다. ‘알파-센타우리’의 두 별을 의인화해서 동역하는 사역자들로 비유해보면 그 안에서 동역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두 별 중에 원래부터 알던 큰 별을 ‘알파-센타우리A’, 뒤늦게 발견한 작은 별을 ‘알파-센타우리B’라고 부른다. B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에는 모든 빛이 큰 별 A의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작은 별 B는 그것에 관계없이 자신의 빛을 발함으로 ‘알파-센타우리’를 밝게 빛냈다. 같은 원리로 사역자들 관계를 보면, 내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내 수고로 다른 동역자가 부각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내게 맡겨진 사역을 묵묵히 계속해야 한다.

반대로 B의 존재가 알려진 후, A보다 B가 더 관심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가졌을 확률이 더 높게 평가된 이유였다. 만약 이때, B에게 관심이 증가되는 것이 싫어서 A가 B의 빛을 방해했다면 ‘알파-센타우리’의 빛은 약해졌을 것이다.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빛내주는 동역자가 곁에 있다면 그의 수고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느 날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더라도 그를 시기하는 대신 그의 존재감이 더 드러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

A가 B보다 3배 정도 크고 밝다. 하지만 B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star)이지 A에 종속된 행성(planet)이 아니다. 같은 원리로 내가 리더일지라도 팔로워들에게 무조건 나를 중심으로 돌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 역시도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사역자들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럴 때 서로가 함께 더 밝게 빛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알파센타우리”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동역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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