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예수께 시선 고정하며 십자가 사랑의 은혜 나눕시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사람들은 잘 태어나는 것과 잘 사는 것, 그리고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잘 태어나게 하고 잘 살게 하며, 잘 죽게 하는 복음이며,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같은 십자가의 은혜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을 통해서 온전히 전달됩니다.

성도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상 제 일언인 죄 사함의 선포와, 가상 제 이언인 믿음에 따른 구원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게 된 자들입니다. 죄의 종노릇 하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을 따르는 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인한 출생은 완벽하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로 잘 태어난 성도라면 이제는 잘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잘 살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 또한 십자가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그 은혜는 예수님의 가상 제 삼언이 증거합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7) 이 말씀은 사랑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한마디로 성도가 사는 방법은 주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로서, 그 사랑의 포로가 되어 그 사랑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태어난 성도로서, 십자가 사랑의 은혜의 포로가 되어 그 사랑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사랑의 관계를 더 확장하며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선, 십자가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삼고 그분께 시선을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대표적으로 군인들과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그 시선을 십자가의 예수가 아니라 그의 옷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예수를 이용하여 얻을 이익에 집중하였습니다.(요 19:23~24) 예수의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는 군인들과는 달리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계셨지만 그분을 나의 구주요, 내 인생을 복되게 하시는 분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곁의 여인들이 되어서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의 소속이 이 땅이 아닌 하늘임을 기억하며 언제나 하늘의 의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그의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으로 두려움 없이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구원과 사랑의 역사에서 예수를 구주로 삼는 일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십자가 곁에 계신 모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칭하였습니다. 헬라어 ‘귀나이’는 모든 여성을 차별없이 부르는 보편적 호칭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모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른 기록을 단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자라면서는 부르셨겠지만 복음서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될 때는 가나 혼인잔치에서처럼(요 2:3), 어머니가 아닌 “여자여”라고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역사 면에서 지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 서 있는 모친이 육신의 모친으로만 서 있어서는 안 됨을 보여줍니다. 이 여인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삼고 모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는 은혜를 입은 모친 마리아는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눅 1:47~55) 육신의 부모로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예수의 모친이 십자가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사랑의 은혜의 포로가 되어 사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는 것입니다. 구주의 은혜를 바라보며 주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주를 높이며 사는 이것이,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또한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도망갔다가(마 26:31), 십자가 현장으로 돌아온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 그 제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자입니다. 제자 요한은 자신이 있을 곳은 십자가 앞이고, 바라볼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십자가 현장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삼았습니다. 그 부요하신 주님의 사랑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평생을 사랑의 사도로 살았습니다. 그는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사랑의 서신들을 남겼습니다.(요한1서~3서) 렘브란트의 작품 <야경>이 암시하는 것처럼, 빛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 속에서 예수를 구주로 삼은 성도의 삶이 하늘의 야경이 되게 하십니다. 아무리 깜깜한 인생 중에 있더라도 빛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바라보며 살면, 반드시 예수의 손에서 밝은 인생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그 사랑 나누어야 합니다.

효도로 따지면 예수님은 날 때부터 효자였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듣고 난 후, 자신이 예수님을 잉태한 것 때문에 만세에 복이 있는 자라 불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눅 1:48) 예수님은 출생 자체가, 그리고 전 생애가 효도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가정에서부터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성전이 아버지의 집임을 증거하신 유월절 예루살렘 성전 사건이 있었습니다.(눅 2:48~50) 누가는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서 순종하셨고,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마음에 두었다고 종결합니다.(눅 2:51) 이는 순종하므로 효도하셨다는 의미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자는 가정에서부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부모님께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가정의 일상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효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엡 6:1~3)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하고, 가족이 함께 있을 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많이 표현하며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교회 생활이나 바쁜 일상을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가까이 계신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계획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예상치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을 물 붓듯 부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부모님을 십자가 현장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그분을 구주로 삼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역설이지만 예수님은 지금 육신의 어머니에게 굉장히 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의 죽음의 현장에 서게 하는 것은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 현장으로 모친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삼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상 제 삼언의 메시지는 제 일언과 제 이언을 통하여 새롭게 잘 태어난 사람들이 어떤 관계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알려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모친에게 요한을 가리키며 아들이라고 하셨고, 요한에게 모친을 가리키며 어머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이는 죄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들은 모두가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습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한 가족이 되었고,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족의 근본인 책임있는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모친과 요한에게 눈을 열어주셔서 새롭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보게 하신 그 시각이 우리에게도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차별 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어머니로, 나의 형제로 관계를 만들어갈 때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이 이슬비처럼 스며들게 될 것입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는 사랑의 은혜를 누리도록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시고 사랑하며 살도록 주신 완전한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며 사십시오. 가정에서 부모와 가족들에게 사랑을 나누십시오. 함께 하는 성도들과 이웃, 특히 지극히 작은 자들을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처럼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은혜에 포로가 되게 하시는 기적을 누릴 것입니다. 사랑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시길 말씀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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