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획/ 한국CE운동 100주년] (4)면려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기획/ 한국CE운동 100주년] (4)면려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 정재영 기자
  • 승인 2021.03.0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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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깨운 CE맨의 헌신 잊지 말아야”
발상지 안동교회 비롯 면려운동 정신 알리는 자료 곳곳에 … “진심 다한 섬김, 교훈 크다”

2월 15일 우리나라 면려운동의 발상지인 안동교회, 6·25 당시 기독의용대 십자군의 본거지였던 대구서문교회, 역대 CE의 자취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부산의 CE역사관을 찾았다.
교단 합동 후 첫 전국CE 회장을 지낸 모형호 목사가 인솔한 이 여행에는 현 전국CE 회장 윤경화 집사와 부회장 정순진 집사, 54대 회장 김경환 장로, 그리고 안동교회CE 창립멤버였던 권연호의 후손이자 전국CE 38~39대 부회장을 연임한 권정식 장로가 동행했다. <편집자 주>

한국CE 100주년의 발자취를 함께 답사한 전현직 CE 임원들.
한국CE 100주년의 발자취를 함께 답사한 전현직 CE 임원들.

면려운동 발상지 안동교회

답사여행의 첫 코스는 한국 면려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안동의 안동교회(김승학 목사)이다. 1921년 2월 5일 오후 3시에 소집된 안동교회 제58회 당회는 앤더슨(한국명 안대선) 선교사 등의 청원을 받아들여 청년면려회(CE) 창립을 결의한다. 한국CE 창립일로 삼는 바로 이 날에 대한 기록은 안동교회 당회록에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한국교회 최초의 CE 결성 과정을 기록한 안동교회 58회 당회록.
한국교회 최초의 CE 결성 과정을 기록한 안동교회 58회 당회록.

초대 회장이 된 권중윤은 이후 경북 일대에 면려운동을 확산시키며, 같은 해 6월 7일 안동교회에서 경북지역기독청년면려회를 결성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1921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0회 총회에서 전국교회에 ‘면려청년회’를 공식화하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안동교회 경내에는 CE운동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를 비롯해 각종 안내표지와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교회 역사전시실에는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전개한 면려운동 관련 역사자료들을 여러 점 관람할 수 있다.

면려운동의 발상지 안동교회 마당에 건립된 기념비.
면려운동의 발상지 안동교회 마당에 건립된 기념비.

교단 분열 이후 안동교회가 소속한 예장통합총회에서는 CE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남선교회’와 ‘장청’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하지만 면려운동의 소중한 역사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한국CE의 뿌리인 안동교회를 찾고 있으며, 예장통합총회도 그 가치를 인정해 2015년 안동교회를 한국기독교사적지 제17호로 지정한 바 있다.

<전국 최초 CE로 시작한 안동교회 남선교회 100년사> 등 초창기 CE운동과 관련된 여러 편의 저서를 집필한 안동교회 임만조 장로는 탐방객들을 안내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면려운동 확산을 위해 불철주야 섬기다 젊은 나이에 순직한 권중윤 등 수많은 이들의 헌신을 한국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임 장로는 힘주어 말한다.

대구서문교회와 기독의용대 십자군 스토리를 들려주는 김병희 목사(왼쪽).
대구서문교회와 기독의용대 십자군 스토리를 들려주는 김병희 목사(왼쪽).

구국애 서린 대구서문교회

안동교회를 출발해 차량으로 1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곳은 두 번째 목적지 대구서문교회(이상민 목사)이다. 6·25가 발발한 1950년, 대구서문교회 앞마당은 구국의 일념으로 전국에서 모인 기독청년들의 함성이 높았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강세로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렸을 시점, 당시 전국CE 회장이던 김병섭 장로와 대한기독교구국단 한경직 목사가 면려회원들을 중심으로 젊은 기독교인들을 모아 ‘십자군’이라는 이름의 민간 의용대를 창설했다. 대구서문교회는 십자군 창설 당시 본부 역할을 했던 역사적 장소다.

같은 해 8월 육군본부의 명령에 의해 부산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십자군 대원들은 대구서문교회를 비롯해 대구제일교회 남산교회 등에서 숙영하며, 계성학고와 신명여학교 교정을 빌려 훈련했다. 그리고 전선에 투입돼 목숨을 바쳐 싸우며 조국을 지키는 용사로 활약했다.

대구서문교회 답사일정에 동행한 역사학자 김병희 목사(서변제일교회)는 “전쟁의 공포와 맹렬한 포화 속에서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다한 선배들의 애국신앙을 본받자”는 이야기로 십자군의 후예인 CE맨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부산에서 김종화 장로가 개관해 운영 중인 CE역사관.
부산에서 김종화 장로가 개관해 운영 중인 CE역사관.

한 세기의 기록 CE역사관

여행의 종점은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자리잡은 CE역사관이다. 예장고신 소속 전국CE 26대 회장을 지낸 김종화 장로(남천교회)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국내외 면려운동 관련 문서들과 사진, 기념품, 미술작품 등 수백 점을 모아 전시하는 장소다.

식물연구가이자 문학가로 활동하는 김종화 장로는 7년 전 자신의 저택에 ‘초애원’이라는 이름으로 야생화 전시장을 개관하면서 CE역사관의 문도 함께 열었다. 역사관에는 1934년에 개최된 조선CE 제1차 4년대회의 안내책자를 비롯해 면려운동 창시자인 프랜시스 클라크 목사의 저서 <Worldwide Christian Endeavor>, 1976년 발간된 <서울CE> 창간호, 김남식 교수의 1979년작 <한국기독교면려운동사>, 독일CE가 1998년 제작한 프로그램북 등이 소장돼있다.

1980년대 초반 CE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고신대학교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면려운동 관련 자료들을 모은 김종화 장로는 이를 기반으로 예장고신총회 기관지인 <기독교보>에 ‘CE선교’라는 타이틀로 1년간 기고하는가 하면, <CE의 역사와 비전>(도서출판 영문) 등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지금도 타교단 CE회원들 및 세계CE 멤버들과 교분을 유지하며 면려운동 확산에 힘쓰고 있다는 김 장로는, CE역사관과 초애원을 자신의 사후 전국CE에 헌납할 계획이라고도 밝힌다.

“금주금연운동, 헌혈운동, 심장병 어린이 돕기운동, 단군상 건립 반대운동 등 각 시대별로 대사회 활동에 적극 나섰던 한국CE가 코로나19 사태라는 어려움을 겪는 조국을 위해 진심 다해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김 장로의 소망이다.

답사여행 안내자인 모형호 목사는 이외에도 한국장로교회 면려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초기 기독청년회가 교회 안에 결성되었던 서울 새문안교회, 면려청년회장으로 3·1운동 당시 학생조직을 이끌었던 김원벽을 자랑하는 승동교회, 제20대와 21대 전국CE 회장을 연임하며 1970년대 면려운동 중흥기를 이끈 백용기 장로가 몸담았던 부산 초량교회 등 여러 교회의 역사관에서 CE의 생생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면려운동 결실로 세운 교회들

전서CE의 헌신을 통해 세워진 부안 동정교회는 지금도 복음사명을 감당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진 왼쪽이 장세준 목사, 가운데와 오른쪽은 홍순율 장로(전국CE 61대 회장)와 모형호 목사(전국CE 57대 회장).
전서CE의 헌신을 통해 세워진 부안 동정교회는 지금도 복음사명을 감당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진 왼쪽이 장세준 목사, 가운데와 오른쪽은 홍순율 장로(전국CE 61대 회장)와 모형호 목사(전국CE 57대 회장).

‘방방곡곡에 전도하자’는 CE의 ‘3대 결의’ 중 한 대목이다. 이 결의에 따라 CE맨들은 언제 어디서나 전도에 힘쓰고, 사람들을 예배당으로 인도하며 교회들을 든든히 세웠다. 

CE맨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 중 현재까지 기록상으로 확인된 최초의 사례는 기독청장년면려회 전서노회연합회(전서CE)를 통해 1976년 5월 3일 전북 부안군 주산면 동정리에 설립된 동정교회(구 동정제일교회)이다.

당시 전서CE 회장이던 김희태 집사(현 서울 동광교회 원로목사)와 기독청년들은 우문수 전도사를 도와, 정읍과 부안을 오가는 길목인 동정리에 교회를 세웠다. 당시 동정교회를 위한 전서CE 회원들의 헌신은 대단했다. 아직 생활기반이 넉넉지 않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음에도 예배당 건축 등 적잖은 규모의 설립 자금을 거의 대부분 책임진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전서CE 서기로 섬긴 고 배일현 집사(훗날 전국CE 45대 회장)는 소 두 마리를 판값을 통째로 동정교회를 위해 헌금하는 바람에 집안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83년에 제작된 <전서노회 30년사>에는 설립될 무렵 동정교회에는 남성 3명, 여성 7명의 성도들이 함께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불과 7년 만에 장년교인 50명과 청년 3명, 중고등부 이하 주일학교 70명으로 교세가 크게 성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동정교회를 섬기는 장세준 목사는 “설립 당시 CE회원들과 선배 교우들이 보여준 신앙과 헌신을 본받아, 전도에 더욱 힘쓰는 공동체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다만 45년 전 건축된 예배당이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보수작업 없이 유지되고 있어, 이를 살피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CE 100년사 편찬 작업 중인 모형호 목사(새부안교회)의 조사에 따르면 진주CE가 35회기에 세운 두량삼오교회, 1977년에 설립된 장성 동화중앙교회와 1995년 설립된 경산 청암교회 등이 CE를 통해 태동한 대표적 교회들이다.

선배들의 전통을 계승해 전국CE는 면려운동의 발상지이자 현재 경안노회 관할 경내인 경북 안동시 태화동에 안동사랑의교회(민세홍 목사)를 ‘한국CE 창립 100주년 기념교회’로 건축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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