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돈이 없어 대학원을 3년 만에 겨우 마친 나는 석사 정훈장교에 응시했다. 감사하게도 합격해 1986년 7월 말일에 전역할 때까지 군에 몸담았다. 중학교부터 돈이 없어 힘들었던 내가 월급을 받으며 군생활을 하고 싶어 도전했던 장교다. 석사학위 덕분에 중위로 임관한 후 받은 첫 월급이 13만9000원. 전역할 때는 15만9000원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열심히 저축했고 이자가 높은 재산형성저축이라는 상품에 가입해 500만원이라는 목돈을 만들었다. 전역하며 100만원으로 좋은 일을 하고, 내 손에는 400만원이 남았다.
그 돈은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사당동 옥탑방 전세 보증금이 되었고, 2학년 말 가정을 꾸릴 때 결혼비용으로 쓰였다. 당시 섬기던 교회의 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꾸릴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00만원! 이것은 열심히 노력하여 모은 첫 목돈이었고, 그렇게 유용하게 쓰였다. 당시로서는 400만원을 모은 자신이 참 대견스러웠다. 훈련기간 포함 40개월, 중위로 근무하며 거의 쓰지 않고 모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나는 부대 안에 살며, 또 거기서 식사를 해결했다. 어쩔 수 없는 근검절약으로 인해 가능했던 일이다. 어디서든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그렇게 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한 달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400만원이지만, 그 때는 온 힘을 다해 ‘쌓은’ 그야말로 ‘적금’이었고, 그것이 나의 꿈을 이루는 데 꽤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400만원은 큰 것이 아님은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내게는 전재산이었고, 그렇게 저축한 덕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것도 크게 보이고, 그것조차 온 힘을 다해야 손에 쥘 수 있던 그때가 기억나면 미소 짓는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한다. 지금도 그 400만원을 모으던 것처럼 힘을 쓰고 또 그렇게 열심히 산다면 훨씬 큰일을 해낼 것 같은데. 400만원이 아니라 4000만원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진 요즘이라 그럴까? 작아 보이지만 큰일을 해냈던 그런 힘이 더이상 없는 것 같은 나다. 모든 과정에서 함께 하시며 견디고 이루게 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은 아닌 지 싶어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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