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예수님 이름 부르며 살면 구원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중심이며 믿음생활의 현재와 미래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는 십자가 은혜입니다. 십자가 없이 은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아는 만큼, 믿는 만큼, 그리고 함께하는 만큼 은혜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가상 제일언,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죄 사함으로 멸망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가상 제이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가상 제이언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은혜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누리는 은혜를 선포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드는 자, 십자가 앞에 서는 자에게 임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현장에는 양편의 두 강도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한 편의 강도는 끝까지 예수를 모욕하고 부인하고 거절하며 심판을 받았습니다. 다른 편 강도는 믿음으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양 편의 강도들처럼 두 길 중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앞에 선 우리 모두가 구원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한 편 강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누리며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의 욕(마 27:44)과 병행하여 서술된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 현장에 있던 자들이 했던 모독하는 말들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양 옆에서 함께 죽어가는 강도들까지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은 예수님 양 편에 달린 그들이 행악자라고 하며, 그 중 한 명이 예수님을 ‘비방’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방’은 헬라어로 ‘블라스페메오’입니다. 이것은 적당한 비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헐뜯는다’, ‘경멸한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저주했다는 뜻입니다. 이 한 편 강도, 행악자는 욕에 욕을 더해 악을 쓰며 저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40절을 보게 되면 또 다른 편의 강도의 말이 등장합니다. 그는 악을 쓰며 저주하는 이 강도를 ‘꾸짖어’ 말합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0~41)

한마디로 “무죄하다. 죄가 없는 분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욕하던 이 사람이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얼마나 매달려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놀랍게도 함께 욕하던 그가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는 이렇게 정반대로 변했을까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가상 제일언 “주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을 듣고 이 강도는 “이 분이야말로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요, 용서하시고 살리시는 분이요, 죄와 사망에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구나”라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이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없는 곳에 구원의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들음으로써, 구원의 은혜와 그 부요함을 경험하며 그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은 말씀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말합니다.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혹여 장애물을 만나게 되더라도 이를 해결해 주시는 역사가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강도는 주님의 말씀을 받고 사모함으로 변화되어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구원의 은혜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말씀을 사모하며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하며 듣기에 힘쓰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 현장에는 기록된 말씀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죄패입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마 27:37) 골고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던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죄패를 보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한 편의 강도, 그는 어느 순간 선포된 주님말씀을 듣고 주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록된 말씀을 신화와 전설로 듣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기록된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리며, 심령에 들어와 영혼 가운데 은혜의 복음으로 역사합니다.

한 편 강도를 통해서 일어난 사건처럼 말씀이 선포되는 곳, 그 말씀을 듣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만남부터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들으면서 삽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기에 구원의 은혜가 있고, 구원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들려지게 될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의 심령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다른 한 편의 강도는 자신의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들은 행한대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그는 다른 편 강도를 ‘꾸짖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꾸짖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아피티마오’입니다. 이는 본래 하나님이 죄를 지은 자를 책망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강도가 이 말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욕하였지만, 주님의 말씀이 임하고 나니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강도는 스스로 죄인임을 시인하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일상에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즉시 가장 먼저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우리가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요청할 때 주님은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리고 큰 은혜로 우리를 위로하시며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그 자리, 그 시점 거기서 구원이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받습니다. 이 한 편 강도는 처음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예수여”라고 그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예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며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 외침은 사실 십자가상에서 죽어가면서 소리치는 간절한 울부짖음이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신 말씀대로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으며, 말씀과 같이 죄를 사해 주시고, 오늘 낙원에 있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 은혜를 지속적으로 주심으로 그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여! 주여!”가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의 현장에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슬픔에서 기쁨이, 넘어짐에서 소망이 나타납니다. 어떠한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희망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의 은혜를 누리도록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길 바랍니다. 거기에서 구원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특별히 회개하는 가운데 구원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격과 영혼 속에 침투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사모하며 듣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구원의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 더욱 풍성히 임하여 행복한 신앙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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