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성경에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는 주연은 아니었고,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을 배려했고, 넘어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데 힘썼으며 자기의 물질을 헌신하며 섬김의 본을 보인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특히 대인관계에서 관계를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친구를 만나든, 적을 만나든 상관없이 그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 중에는 사람은 좋은데 그 사람과 교제를 해 보면 오래지 않아 깨진 유리조각처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 바나바는 달랐다. 그는 때로 필요한 일군이 있다고 생각되면 보따리 싸들고 찾아가서 그 사람을 데려다 일꾼을 만들었다. 바나바는 다소라는 지역을 찾아가 당시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바울을 찾아내어 데려왔다. 당시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를 데려다가 제자들에게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교회에는 인재를 발굴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쓰레기처럼 뒹구는 사람들 중에서도 보석을 발견하는 혜안의 눈이 필요하다. 사실 바나바가 아니었더라면 바울과 같은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바나바는 바울의 스승이었고, 멘토였고 그를 최고의 선교사가 되도록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의외의 반전이 등장한다. 바나바가 스카우트하고 공을 들여 키웠던 제자 바울이 스승인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행 15:36~39) 선교 여행 때 데리고 갔던 바나바의 조카 마가가 말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바울은 이것을 지적하며 두 번째 선교여행에는 이런 사람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고 바나바는 그래도 데리고 가자고 요구하다가 다투게 된 일이었다. 똑같은 주의 일을 하면서도 바울은 일 중심이었던 반면 바나바는 관계 중심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냉철한 담즙질의 사람 바울은 철두철미하게 일에 몰두한 반면 후덕하고 온화한 성품의 사람 바나바는 관계를 중시했던 것이다.
디모데후서에는 바울의 최후 유언이 나온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세월이 흘러 바울이 임종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바나바의 조카 마가였다. 여기서 우리는 관계의 달인이요, 재활용의 귀재였던 바나바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바나바는 바울과 헤어진 후 마가를 데리고 선교 일을 계속했다. 끝까지 마가를 버리지 않았고 사람을 만들었고, 일꾼을 만들었다. 신약성경 중에 마태복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읽히는 책이 바로 마가가 기록한 <마가복음> 아닌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할 일군을 자칫했으면 영원히 잃을 뻔 했던 것이다. 바나바는 끝까지 마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을 따뜻하게 포용하며, 때로는 실수도 품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가능성을 키워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등이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밟고 서서라도 으뜸이 되려고 하지만 바나바는 누군가의 뒤에서 2인자로 만족해했던 사람이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섭섭하게 생각지 않으면서 돕는 수습자로서, 참모로서 자기의 역할을 다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그릇됨을 살펴보자. 내가 바울감인지, 아니면 바나바 감인지를 생각해 보자. 나는 누가 뭐래도 앞서서 일을 치고 나가며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일해야 한다. 그러나 2인자로도 만족한 리더십을 소유했다고 느낀다면 바나바처럼 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만드는 데 쓰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주여 나를 기질대로 사용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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